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의손 Sep 11. 2024

[오늘의 명언] 나무라도 보이는 게 어디야!

절박한 사람에게 숲은 없다.

 경력단절의 큰 산을 넘어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 되는 과정은 정말 눈물겨운 역경들이 많았다. 제일 큰 적은 남이지만 나와 법적으로 엮인 시어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또 다른 걸림돌은 두 아들들이었다. 내 자식이야 어떻게든 이고, 지고 산 넘고 물 건너갈 수 있지만 남의 아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존재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정말 발 뒤꿈치만 봐도 화가 나는 존재다. 무엇이든 해야 했다.

 절박함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직장인인 나를 만들어 냈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아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발 뒤꿈치만 봐도 화가 났다. 무엇이든 해야 했었다. 절박함이 맨발로 절벽 앞에선 나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밀고 있었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라는 곳에서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걸 도와준다는 상담사의 말에 신청을 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남편에게 타서 쓰고 검사까지 받는 천 원, 만원이 싫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독립이 꼭 필요했다. 상담사는 나와 짧은 개별상담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나는 나무를 볼 수가 없었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고 멀리 봐야 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숲을 보라는 말은 무언가를 가지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당장 할 수 있는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그런 말은 무용하다. 무언가 준비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상한 말로 거시적으로 보고 미래를 생각해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라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십여분이 좀 넘는 그 짧은 상담으로 나를 판단하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보다 20살은 어린 사람이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각개전투를 하며 하루하루 버티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물론 나이가 어리다고 그 사람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는 다르고 그 기준이 나이가 아닌 것을 안다. 

 '네가 내 인생을 알아?'라는 말이 목구멍을 지나 앞니 앞까지 나왔지만 꿀떡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내가 참아야 했다. 내가 모자라서 이런 말을 듣고 이런 취급을 받는다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내 생각은 틀렸다.


 "이 사람들아! 나무도 겨우 본다고. 이제야 나무를 볼 수 있다고... 숲은 개뿔.. 보여야 본다고."


낭떠러지에 서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아보려 겨우 더듬더듬 느낌으로 나무인 것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숲을 보라니? 보여야 보는 것이다. 

원하던 직장인이 된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숲을 보라 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것을 하라고. 있는 만큼 하라고. 자신을 갈아내서 무언가 창조하지는 말라고 조언할 뿐이다. 



 "가다 보면 나무가 보이고 숲도 만나게 된다고,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당신이 틀린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삶에서 정답은 없다고."


 "어쩌면 나무만 봐도 옳은 삶일 수도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