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생각.
새벽에 일어나 아들의 도시락을 싼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은 가격대비 양도 적고 무엇보다 맛이 없어 남길 때가 있다고 했다. 식탐이 있는 아들이 밥을 남긴다는 말에 호기롭게 도시락을 싸준다고 했다. 공부를 한다는데 그것 하나는 해준다는 생각에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 첫날엔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들이 먹을 것이라 생각해 나름 정성을 들였다. 날씨가 쌀쌀해 보온도시락에 밥을 담고 국도 뜨겁게 데워 넣어 주었다. 밤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밥이 아닌 다른 메뉴를 주문하면 다음날은 또 그 메뉴로 만들어 준다. 비워진 도시락을 보면 새벽에 일어나는 수고 따위는 깔끔하게 잊힌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삼촌이 쓰던 사각 양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엄마가 시장에서 요술공주 밍키가 그려진 은색도시락을 사 와 나에게 건넸다. 처음으로 내 도시락이 생긴 것이다. 3대가 같이 생활하는 집에서 나는 경쟁순위에도 들어가지 않는 존재였다. '가시나' 한마디에 기가 죽고 '큰딸'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이 많은 것을 당연하게 포기하게 했다. 그런 나에게 내 도시락이 생겼다. 가끔 밥 위에 계란후라이 하나가 들어 있는 날이면 도시락 뚜껑을 여는 점심시간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지금은 아이들이 급식을 하니 그런 마음을 알 길이 없을 테지만 나는 그랬다. 내 아들도 따뜻한 도시락을 먹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매일 도시락을 싼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없는 살림에 아침에 도시락 4~5개를 싸면서 딸인 나에게 계란을 얹어 주던 엄마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 똑같다고 하겠지만 사실 자식이라고 사랑의 양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마음이 좀 더 가는 자식이 있고 그냥 믿어주는 자식이 있다. 나의 엄마도 그렇다. 사람이라면 각자의 서러움이 있겠지만 그것은 각자의 몫인 것이다. 늘 이해하려 애썼지만 이제는 멈췄다. 내가 노력한다고 바뀌는 게 없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의 노력이 무의미할 때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더 노력하고 더 맞춰주고 더 사랑하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또 다 맞는 말도 아니다. 50년 살아보니 그렇다. 노력의 양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많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아들이 내 도시락을 보고 싫다거나 화를 낸 적은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양이 많아 밥을 남겨오면 저녁에 자기 방에서 다 먹고 빈 도시락을 싱크대에 넣어 주었다. 맛이 없어 남긴 게 아니라고 내 눈치를 보며 변명 같은 말을 해 주는 아들이 고맙다. 2.2kg으로 36주에 태어난 아들이 이렇게 자라 내 마음을 다독여 준다고 생각하니 계란후라이를 내 도시락에 넣어 주기 위해 얼마나 할머니 눈치를 봤을 엄마 생각에 코끝이 찡하다.
내일은 월요일이라 도시락도 쉬는 날이다. 그래도 자식을 위한 마음은 쉴 수가 없다. 오늘 밤도 도시락 반찬 걱정에 몇 번이나 냉장고를 여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