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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건넨 50만 원

말년복을 고대하며.

by 신의손 Mar 26. 2025

 출근을 하면서 아들을 깨우고 간소한 아침을 책상에 내려놓고 나오려는데 못 보던 아이패드가 보였다. 작년 겨울 남편이 사준 아이패드를 몰래 팔아 혼이 난적이 있던 아들에게 다시 아이패드가 생긴 것이다. 남편은 아들의 수능이 끝나고 용돈과 카드 등 금전적 지원을 모두 끊었다. 내가 얼마간의 용돈을 주기는 하지만 너무 올라버린 물가와 평소의 씀씀이를 생각하면 간식값도 되지 않는 금액인데 책상 위에서 반짝거리는 아이패드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침대에 누워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미동도 없는 아들에게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다.


 "훔쳤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아들의 말에 등짝을 한대 후려치고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출근을 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려는데 팬트리에서 아들이 무언가를 분주하게 찾고 있었다. 종이백을 하나 빼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편의점이라도 가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아들의 노크에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큰일이 아니면 늦은 밤 엄마와 독대하는 일은 드물다. 재수를 했지만 자신이 목표한 대학에 가지 못했고 고졸로 살겠다는 아들은 남편의 강요 같은 설득에 밀려 남편이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입학했다. 남편을 위한 효도입학을 한 터라 마음이 더 조마조마했다. 7월 군입대를 앞두고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을 칠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기로 하고 주저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 꺼내기를 기다렸다. 이미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1년 넘게 들어 놓았던 적금은 갖가지 일들을 수습하는 데 사용했고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납부하면서 모두 소진되었다. 남편은 아들의 등록금조차 내지 않았고 입으로만 일을 지시할 뿐 금전적인 것은 모두 내 몫이다. 이제는 해지할 적금이 없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웃는 게 더 불안한 내가 어색한 침묵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들이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5만 원 몇 장이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스탠드 불빛에 반짝였다. 용돈을 받아쓰는 아들에게서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정색을 하는 나에게 아들은 자신이 정말 필요할 때 쓰려고 아껴놓은 시드머니 40만 원을 굴려서 아이패드를 샀고 일주일도 안된 아이패드를 방금 팔았다고 했다. 그 돈 중 50만 원이 내 앞에 놓였다. 믿지 못하는 나에게 자신의 휴대폰으로 돈의 출처를 보여주며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휴대폰과 아들을 번갈아 보는 나에게 아들이 말했다.


 "훔친 거 아니고 내가 번 거라니까.."


 아들은 나름의 최선을 다 했겠지만 나는 땀 흘리지 않은 돈은 믿지 않는다.  또 아들이 준 이 돈을 절대 쓰지 못할 것도 안다. 어제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입대 전까지 쓸 테니 용돈을 미리 줄 수 없냐고 했지만 달라는 대로 다 줄 수 없어 제시한 금액의 반을 송금했다. 돈이 모자라 며칠 쓰지도 않은 아이패드를 판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몰려온다. 자식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는 마르지 않는 용돈주머니가 되어야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버겁다. 아들이 준 돈이니 받는다. 아들이 준 돈은 그동안 엄마에게 가져다 돈에 대한 미안함의 값이라고 생각하고 못 이기는 받는다.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어딜 가서 물어봐도 내 사주는 말년복이 있다는데 말을 믿어 본다. 말년복이 있다는 말은 자식도 평탄 삶을 산다는 말이니 주머니 속 자식을 생각하는 신사임당의 마음과 말년복을 기원하는 내 마음을 더해 아들이 준 돈을 ATM기에 넣는다. 부디 이 간절함이 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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