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입시를 끝내고.

까치발도 끝내고

by 신의손

수능은 끝났지만, 실기시험이 남은 아들은 여전히 신경이 날카로웠다. 세 번의 실기시험 중 겨우 첫 번째 실기시험이 끝났을 뿐이다. 남아있는 두 번의 실기시험으로 아침에 학원으로 가 늦은 밤이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손과 팔뚝에 묻은 물감 얼룩이 안쓰러웠지만 아들에게 말 붙이기조차 겁이 났다. 학원을 가지 않은 일요일은 종일 잠을 자고 저녁이 되어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까치발을 하고 아들 방문 앞을 지나다녔고 퇴근 후 피곤해 책상에 앉아 졸다가도 아들이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저녁을 차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안타깝고 미안했다.

남아있는 실기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아들의 불안감은 커져 목표한 대학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출근을 앞둔 나를 붙잡고 새벽 2시를 넘긴 시간까지 두서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목표한 대학의 합격자 발표일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흥분한 아들을 겨우 진정을 시켜 방으로 보냈다. 사실 나도 아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장되고 떨리지만 어른이고 엄마니 속으로 삼키고 말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아들은 남일이라 태평하다며 서운해하기도 했지만, 출근해서 하루 세 번은 아들이 첫 번째로 지원한 대학교 입학처를 검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험생 엄마로 1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다. 아들도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마지막 남은 실기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실기시험 후 아버지의 기일에 절을 하면서도 나는 아들의 합격을 빌고 또 빌었다.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말을 아끼고 최대한 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평소보다 늦은 퇴근을 한 저녁 지하철에서 녹초가 되어 눈도 뜨지 못하고 넘어지지 않으려 흔들리는 몸을 곧추세우며 종일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평소에는 문자로 연락을 하지 않는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확인하지 않은 숫자 2가 공포로 다가왔다. 무슨 문제가 생기는데 분명했다. 어젯밤 다음 주에 있을 실기시험과 버스를 갈아타고 왕복해야 하는 불편함을 나에게 말했던 기억이나 겁도 났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눌렀다. 피곤한 탓인지 눈앞이 사진 2장이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휴대폰을 눈앞으로 가져와 확대했다. 사진을 확인하고 급한 마음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목이 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태연한 아들과는 달리 나는 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에서 눈물범벅이 된 채 서 있었다. 그렇게 아들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울면서 합격증을 보고 또 봤다.

집으로 들어와 미역을 찾아 물에 담갔다. 다음날이 나의 생일이었지만 입시 중인 아들을 생각해 올해는 생일이라도 미역국은 먹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나에게 안겨 내 생일선물로 대학합격증을 준다는 약속을 지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 실기시험에 왕복 12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어색했다.

다음날 케이크를 사 와 나의 생일과 아들의 대학합격을 축하했다. 각자의 소원을 빌고 초를 함께 불었다. 맛있게 미역국을 먹고 아들도 나도 구름 위를 걷는 듯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2주 뒤 남편은 아들의 자취방을 구하러 서울에 다녀왔다. 학교가 궁궐이라며 본인이 대학에 합격한 것 같이 기뻐했다. 아들도 싫지 안은 듯 조용히 남편의 말을 듣기만 했다.


2월이면 아들이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나 서울로 간다. 오늘, 지금의 엄청난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감정을 잊고 만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합격과 불합격의 순간이 온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달의 기쁨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불합격의 아픔을 기억할 수도 있다. 부디 자만하지 말고 이 행복감을 오래오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가 힘든 시간이 왔을 때 꺼내 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 만약 올해 아들이 이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면 나는 내년 1월까지 자발적 까치발과 묵언수행을 하며 아들의 눈치를 봤을 것이다. 그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달려준 아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20년 동안 내 곁에서 먹고, 자고, 웃고, 울면서 또 혼나고 싸우면서 커온 덩치만 큰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디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시가 끝나고 나도 아들도 이제는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세상에서 날개를 펴고 높게 날 수 있기를, 실패하더라도 계속하면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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