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길치의 서울행

블루베리스무디

by 신의손


비가 오는 저녁 퇴근 후 서울행 기차를 탔다. 짐가방을 든 아들은 피곤한지 기차가 출발하고 잠이 들었다. 창밖으로 부딪히는 빗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올케가 배웅을 나와 있었다. 10시가 넘어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들의 이삿짐이 11시면 도착할 것이라 9시에 아들의 자취방으로 이동했다. 아들방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혼자 쓰기 좋은 방 같았다. 창문도 2개나 있어 채광에는 문제가 없어 보고 무엇보다 혜화동의 분위기가 고즈넉해서 마음에 들었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아파트에 거주한 지 30년이 넘어가다 보니 주택가가 주는 정겨움이 새롭게 다가왔다. 높아봐야 2,3층의 주택들과 아들이 다닐 대학의 기와 담벼락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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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아들은 피곤하다며 길바닥에서 뒤통수 인사를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아들 자취방의 대문을 나서면 길 하나를 두고 학교가 보였다. 아들은 자취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늦잠을 자다 슬러퍼를 신고 이 골목을 달릴 것 같다. 마침 이삿날이 졸업식이어서 젊은 청춘들이 꽃을 들고 졸업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 있었다. 몇 년 뒤 아들의 졸업식을 미리 보는듯해 왠지 모를 감정들이 코끝에 앉아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샘을 막았다. 일반적인 졸업가운과 학사모가 아닌 한복 같은 느낌이라 파란 하늘과 너무 잘 어울려 특별해 보였다. 교정에 들어서니 학교 안에 궁궐이 있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내 아들이지만 이런 곳에 공부하면 정말 공부할 맛이 날 것 같아 진심으로 부러웠다. 재수를 하면 합격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가 삼수를 해도 절대 정시합격은 못한다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극 T인 아들에게 핀잔만 들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출구 앞 의자를 선점하기 위해 올케와 인사를 하고 서울역 앞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 부지런히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길치다. 부산에서 길치가 서울에서 길치가 아닐 수 없었다. 계단을 올라와 직진만 하면 될 것을 사람들에 휩쓸려 지하로 내려갔다가 지하철게이트를 보고 놀라 다시 올라왔다. 기차에 오르자 직원이 출발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방문을 열었다. 책상이 빠진 자리를 보자 아들이 이 집에 없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여동생의 당부대로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루 집을 비운 탓에 상전인 겨울이가 화가 나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날밤 거실에서 혼자 잤다. 다음날 4시간 동안 아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정리했다. 큰아들이 예방접종을 하고 군입대를 해서 인지 눈물의 아쉬움보다는 자유로움이 크다. 지금 한창 MT중일 둘째 아들이 깍쟁이 서울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란히 붙은 두 아들의 방이 쓸쓸해 보이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큰아들이 군에서 돌아올 것이고 나의 짧은 자유도 끝이 날 것이다. 지금은 걱정보다는 응원의 마음으로 두 아들을 바라본다. 우리의 시간이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는 거지 같은 날이 계속되어도 저 하늘처럼 찬란하게 맑고 푸르른 날이 올 것을 잊지 않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OT때 같은 과 아이들 앞에서 유일한 경상도 사람이라고 블루베리스무디를 스무 번 넘게 말했다는 아들말이 생각나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는다. 서울말이랑 뭐가 다르냐고? 블루베리스무디! 블루베리스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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