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자식을 키우는 것도 처음인 초보 엄마였다.
무언가 하면서 내 삶을 버텨 내야만 했다. 독박육아로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하고 기계처럼 똥기저귀만 갈면서 내 인생을 보낼 수 없었다.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게 산후 우울증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남편이 하던 사업도 돈만 까먹을 뿐 카드 8개를 돌려 막기 하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통장의 잔고를 걱정하며 현금서비스나 리볼빙을 해야만 했었다.
나는 무언가 결정하면 바로 실행하는 정말 현실적이고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결정하면 그냥 시작한다. 이러한 성격이 어쩌면 장점으로 작용해서 공부의 원천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도 그랬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능력은 어디까지 인가?
어느 정도 시간을 가용할 수 있는가?
운전면허증과 결혼 전에 따놓은 자격증이 몇 개 있긴 했지만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혼해 어린아이가 있고 시댁에 얽매여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장에서 일해 보는 게 꿈이었던 나는 제조업에도 지원을 했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서류탈락이 되었고 어쩌다 면접을 보러 가면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세상의 쓴맛을 봐야 만 했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시급이라도 좋으니 아이들 분유값과 기저귀값정도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세상은 경력단절된 나를 세상에서 계속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취득할 수 있는 국가자격증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국가자격증보다는 쉽게 딸 수 있는 민간자격증도 넘쳐나고 있었으나 국가자격증은 무시받을 일이 없고 이력서에도 당당하게 쓸 수 있다는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길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모든 시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며 나의 뇌는 이미 리셋된 지 오래여서 솔직히 아침, 점심, 저녁 메뉴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임신을 위해 퇴사를 하고 임신을 했을 때 태교 삼아 나의 로망을 실현하고자 자격증을 땄었다. 딸아이를 출산해 똑같은 원피스를 내 손으로 만들어 입고 피크닉을 가고자 했으나 나에게 왔던 딸아이는 임신 6개월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세상에 쉬운 자격증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 두 개의 자격증을 따면서 즐거웠었던 같다. 잊었었는데 컴퓨터 관련 자격증 하나는 큰아이를 임신하고 실기시험을 보러 갔었다. 임신한 채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러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공부도 하고 재미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자격증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생각해 보았다.
나는 손이 빠르고 무언가 만드는 걸 잘하니 손을 움직여 창작을 해 내는 자격증들을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대학교에서 선착순 무료로 구민들에게 제빵기능사 자격증반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신이 준 기회야!
역시 하려고만 하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더니 어디선가 한줄기 빛이 보이고 있었다.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돌아오는 하원하는 오후 2시까지 나는 제빵실로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행복하면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만 나는 나의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사회로 나아가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어야 수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틈틈이 공부를 해 필기시험은 이미 합격한 상태에서 제빵 실기 수업을 들었고 한 달 뒤 제빵기능사 국가자격증은 내 손안에 있었다.
그렇게 나의 자격증 공부는 시작되었고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