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이 휘었다. 그리고 시험관과 눈이 마주쳤다.

인생은 타이밍.

by 신의손

일곱 번의 도전 끝에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붙은 나에게 동생은 축하덕담으로 동네잔치를 열라고 했다. 부끄럽지만 마음 같아서는 정말 아파트 입구에 현수막도 달고 국수라도 삶아 아파트 아줌마들을 불러 잔치라도 하고 싶었다. 일곱 번 시험의 접수비만 모았어도 짜장면에 탕수육大자는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택시비와 나의 심적 고통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 비용은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났다는 걸 안도했고 신청한 자격증을 보며 나는 기뻤다.

이제 시험장에 끌고 갈 케리어에 도마며 칼, 냄비 같은 조리도구를 싸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양식조리기능사에 도전하고 있었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양식조리기능사자격증도 필요했다. 필기시험은 한식조리기능사 필기로 대체가 되어 실기시험만 치르면 또 자격증이 생기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워낙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다시 일곱 번이나 떨어질까 싶은 생각 때문에 심리적 부담은 없었다. 단련이 된 것인지 어떻게든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까다로운 것들만 나오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시험장에 들어갔다. 이미 7번의 한식시험으로 시험장도 익숙했고 어쩐지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시험장에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시험문제는 감자수프와 홀랜다이즈 소스였다. 문제는 감자수프가 공정이 좀 번거롭고 홀랜다이즈소스는 버터를 중탕해서 노른자와 섞어줘야 하는데 종종 중탕한 버터의 온도가 높으면 노른자와 섞는 과정에서 분리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분리가 된다면 그냥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동안 연습한 걸 생각하고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감자먼저 씻었다. 감자는 레시피상에는 깍둑썰기해서 익혀야 하는데 깍둑썰기를 하면 제 시간 안에 절대 익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완절 채 썰어서 다져야 한다. 그리고 고운체에 내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걸로 수프를 만들어 내고 크루통을 만들어 얹어 내면 완성이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가고 총체적 난국이다. 마음과는 달리 감자는 빨리 익지 않았다. 체에 내린 감자는 다시 한번 끓여 내야 하기 때문에 완전 다 익힐 필요는 없다. 그런데 덜 삶아진 감자는 아무리 으깨도 으깨지지가 않았다. 냄비에서 금방 꺼낸 감자를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고운채에 내리고 있었다.


숟가락이 휘고 있었다.


시험장에 있던 얇은 숟가락이 휘고 있었다. 당황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유리겔라가 된 듯 숟가락이 힘없는 엿가락처럼 완전히 휘어 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마침 감독관이 채점판을 들고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인생이 또 이렇게 고난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쉽게 지나갈 리가 없는데 어쩐지 쉽다는 생각을 하고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위기는 기회다' 생각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숟가락을 다시 펴고 천천히 감자를 으깼다. 감독관이 지나가면 도마에 부어서 칼로 다지든 나무주걱으로 으깰 요량이었으나 절대 그냥 지나갈 감독관들이 아니다. 국가자격시험장에서의 채점은 뭔가 실수가 발생하면 끝까지 붙어서 점수를 깎는다. 그것이 감독관의 역할이다. 아무리 잘해도 점수는 더해지지 않지만 실수를 하면 할수록 점수를 뺀다. 그것이 감독관이 해야 할 일인이다. 더하기는 없고 빼기만 있는 그곳이 국가자격시험장이다.

잘 삶아진 감자는 살짝 힘만 줘도 체에 잘 걸러지지만 덜 익은 감자는 아무리 힘을 주어 으깨도 절대로 으깨지지 않았다. 시험시간 내내 식은땀이 나고 한식조리사 시험이 생각나 손이 덜덜 떨렸다. 크루통도 태우지 않고 잘 만들어서 감자수프 위에 얹어 먼저 제출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홀랜다이즈 소스는 빠르면 10분 이내에 완성할 수 있어서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버터를 고온으로 녹이면 노른자와 섞이며 층분리가 되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했다. 물이 있는 냄비에서 꺼내다가 물이 들어가도 불합격이기 때문에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홀랜다이즈 소스는 빨리 완성해서 제출하고 설거지를 하고 내 물품들을 챙겨 시험장을 나왔다.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불안감도 밀려들었다. 한식시험에 너무 떨어지다 보니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찍고 있었다. 합격날 아침까지 합격확인 하기가 겁이 났다. 사실 또 떨어지면 동생의 핀잔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클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 결과확인을 미룰 수는 없었다. 상시접수인 실기 시험을 접수하려면 일단 합격 확인을 해야 했다. 다행히 70점대로 무난하게 합격을 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차체로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인생이라는 것은 타이밍이다. 나는 나름의 겸손함을 장착하고 최선만 하자 싶었다. 그런데 어찌 사람의 마음이 내가 생각한 대로만 되지 않는다. 절실하면 어떻게든 될 때까지 하게 된다. 내 자격증의 8할은 절실함이었다. 자존심 다 내려놓고 절대 두 번은 없다는 그 절실함. 그리고 유리겔라처럼 숟가락을 휘게 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감독관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태연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면 결과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집에 와서 캐리어에 담긴 물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새로 구입해서 가져간 체도 다 내려앉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숟가락이 휠정도로 감자를 눌러댓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새 걸로 만나 시험장에서 한번 쓰고 그 아이는 나에게 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재활용장으로 가 나와는 영원한 안녕을 했다. 너덜 해진 마음도 함께 떠나보냈다. 그렇게 2013년 8월의 뜨거운 여름이 선선한 가을바람을 고대하며 하나의 자격증을 남기고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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