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는 실망을 가져올 뿐.
자격증만 따고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내가 목표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는 곧바로 사회로 복귀할 줄 알았다. 취직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아르바이트라도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자리를 어디서 알아봐야 되는지도 몰랐고 막연하게 워크넷이나 뒤지고 있었다. 집 근처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어린이집에서 구인공고가 난 것을 알았다. 나는 한식, 양삭 자격증이 있고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니 나름 메리트가 있었다. 두 아들을 유치원 등원 차량에 넣어주면 바로 출근하면 되고, 당연히 퇴근도 오후 3시면 적당했다. 집안일이야 하려고 하면 끝이 없지만 나만 눈을 감으면 또 할 것도 없는 게 집안일 이고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일단 전화를 해서 면접 약속을 잡아야 했다. 가끔 지원자가 몰리면 또 쓰디쓴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하기 때문에 스피드 있게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다. 전화를 하니 바로 동호수를 알려 주었다. 대단지 아파트이기는 해도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최대한 단정한 모습으로 이력서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몇 가지 질문들이 오가고 어린이집을 나오기 전 주방을 살펴봤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주방이 보였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음 주부터 원생들이 들어오기로 해서 지금은 한창 준비 중이었다. 0~5세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부모님들이 간식을 싸서 보내기도 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다고 했다.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한지 물어보시는 원장님이 어찌나 감사한지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올 수 있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시며 내일 까지 연락을 준다고 했다. 자격증이 많아서 간식도 다채롭게 만들어 먹일 수 있겠다며 좋아하셨다.
그날저녁 아이들에게 출근을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엄마가 돈도 벌고 일도 하니까 배달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당시엔 아이들이 아토피로 힘들 때라 과자하나도 사 먹이지 않고 다 만들어서 먹였다. 빵이며 과자며 하다 하다 새우깡도 만들어서 먹였고, 아토피에 대한 공부를 한참 할 때라 나도 아이들도 각자 꿈에 부풀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놓고 집안일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거절을 위한 전화였다. 어린이집원장님은 집도 같은 아파트고 내가 너무 마음에 들지만 고용센터 통해서 지원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써야 급여 지원이 되어서 아쉽게 되었다고 하면서 다음에 조리사 자리가 비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래 어쩐지 쉽더라니. 인생은 원래 좌절의 맛도 있어야지. 그래야 인생이지. 내 삶 속에는 결코 쉬운 것들은 없었다. 남들과 똑같이 노력을 하면 당연히 나는 밀리고 또 밀려 존재감조차 없어졌었다. 어떻게든 내가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해야만 했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나 말고는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걸어서 10분, 버스로 한 코스 거리에 시댁에 있었지만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한다는 대쪽 같은 신념을 나는 넘지 못했다.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고 삼시세끼 밥까지 제시간에 차려놓고 자기에게 피해 주지 말고 알어서 남는 시간에 일을 하러 나가라고 해놓고 나가서 벌면 얼마나 번다고 밖으로 나갈 생각부터 하냐는 그 이중적인 말에 화가 났지만 생활비를 받아 쓰는 내가 일단은 참아야 했다.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다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오냐, 그래! 내가 꼭 돈 벌어서 복수한다.
복수할 거야! 더 이상 집에서 밥만 하지 않을 테니 두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