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보내고 보이스피싱전화가 왔다.
나는 속지 않았다.
결혼 후 13년 끊어진 경력을 이어가려니 아무도 하지 않는 두 달짜리 계약직도 웃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두 달짜리 계약직은 사양했을 텐데 그때는 절박했다. 그래서 출근하면서 웃었고 그 두 달 간이 너무 행복했었다. 한 시간 전에 출근해서 직장인이 된 것을 즐기며 믹스커피 한잔 먹으며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만끽했고 계약 마지막날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눈물로 만든 두 달짜리 계약직 경력을 발판으로 11개월짜리 계약직도 무사히 계약종료를 했고 나는 바라던 1년 1개월짜리 경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계약직은 말 그대로 앞날에 대한 보장이 없이 계약기간이 끝나고 운이 좋아 재계약을 하게 되면 그나마 1년이나 2년은 숨통이 틔이지만 그다음은 또 발바닥에 땀나게 나를 받아줄 어딘가를 찾아야 한다. 경력도 없고 나이는 먹어가는 여자사람아줌마인 나는 뿌리 없이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계약직이 너무 싫었다. 나는 정규직을 원했지만 나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구두계약을 한 곳에서 재계약을 하려면 1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작고 소중한 1년 1개월짜리 경력을 가지고 나의 자격증을 발판 삼아 나를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내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정규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가 희망한 것은 서류통과가 되고 면접장에 입성해 면접을 보기까지였다. 딱 거기까지만 바랬다.
우선 나의 자격증을 분류하고 거기에 맞춰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야만 했다. 좁게는 전혀 다른 3개의 직군이 나왔고 넓게는 6개 정도의 직업군이 나왔지만 6개의 자기소개서를 쓸 심리적 고통을 나는 감내할 여력이 나는 없었다. 그래서 3개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파일화 했다. 이것도 큰 산이지만 더 큰 산이 현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 제일 큰 산은 나의 나이였고 그다음은 스펙이었다. 이 두 가지는 당장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이를 속일 수도 없고 없는 스펙을 당장 만들어 낼 수 도 없었기에 나는 나의 눈높이를 과감히 낮추었다. 사실 나는 일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학원에 새벽청소나 개인병원의 청소일자리도 지원을 했지만 나이가 젊은 건 좋은데 청소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전화로 거절을 당했다. 새벽에 1시간 한 달을 일하면 35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는데 나는 거절을 당한 것이었다. 몸을 쓰는 일은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게 경력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나 사무직은 또 달랐다. 같은 스펙이면 나이가 우선이었다. 사무직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나니 경력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 요즘은 컴퓨터를 못 다루는 사람이 없고 자격증이 많고 손도 빠르다. 나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무려 1회 때 취득한 사람이다. IBM컴퓨터로 회색바탕화면에 초록글씨가 나오는 응답 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CRT모니터를 썼었다. 그때만 해도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없었고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컴퓨터(서류)를 제일 잘 다뤘었다. 한창 컴퓨터가 상용화되던 시기라 회사에서도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컴퓨터를 책으로 배우던 지금의 내 나이 연배의 상사들이 망쳐놓은 서류를 수정하고 컴퓨터를 손보곤 했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고 다들 너무나 스마트해졌다. 그래서 나의 쓸모는 다 사라졌고 경력도 없어졌다.
나는 고집이 있고 융통성이 적어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그 계획에 포함시키는 사람이다. 나도 알지만 태어난 기질은 바꿀 수 없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고지식함과 관료적 마음가짐은 아무리 깎고 깎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정한 기준과 가치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데 일단 내가 마음을 먹고 하고자 하면 끝까지 하기 때문에 나도 내가 가끔은 무섭기도 했다. 나는 모든 직군을 버리고 오로지 기준을 나이로 삼았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지하철역이 가까운 곳을 찾았다. 급여는 시급일 테니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고민을 해서 이력서를 보냈다. 어차피 떨어질 것이고 한 달 쉬다 일하러 갈 테니 부담도 없었다. 면접 보러 오라면 가면 되고 연락이 없으면 연락이 없다보다 할 참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침대에 누워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당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라 내 무료함을 달래줄 보이스피싱전화라고 생각하고 받았다. 역시 보이스피싱범들은 영악했다. 내 이름도 알고 나의 주소지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하는 말에는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내 정보가 흘러들어 가고 있는지 이력서를 전송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이런 정보력이면 정말 난 놈들이고 뭘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도 보이스피싱에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 건성으로 예, 아니오로만 대답을 하니 상대방 여자가 출근을 하지 않을 생각이냐고 하며 짜증을 내듯 말을 했다. 순간 나는 화가 나서 도대체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고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목소리에 놀랬는지 상대방여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웃음을 참으며 좀 전에 이력서를 전송하지 않았냐고 나에게 물었다. 이력서는 전송한 게 맞지만 도대체 어떻게 내가 이력서 전송한 것까지 알았냐고 물으니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 쉬며 본인은 조금 전 이력서 보낸 곳의 인사 담당자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고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다음날 면접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