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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Dec 21. 2023

일관성 있는 직장생활

19대 1

 나는 직장에서 19:1로 일한다. 물론 여기서 1이 나다. 열아홉 명을 상대하는 샘이다. 19명의 다른 직군과 1명인 나. 19명은 힘이 있다. 층층으로 나름의 서열이 있고 체계도 있다. 똘똘 뭉치면 또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나 혼자다. 서열도 없고 체계도 없이 그냥 나뿐이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6년 차이지만 신참이나 다름없다. 나의 일은 내가 다 해야 하고 누가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 작년 이맘때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고 있을 때도 회사의 인트라넷에 쪽지와 톡이 여러 개 들어와 있었다. 처리되지 않은 일들이 있다고 얼른 마무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 장례 중이라고 다음 주 출근해서 마무리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돌아온 대답은 '몰라서 미안하다'였다. 19명이 협업을 하는 부서에 말도 하지 않았다니 없는 기운이 더 빠졌고 만약 기운이 더 있었더라면 아마 막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곳은 소통이 잘되는 듯하면서도 정말 불통이기도 한 곳이다. 하나 특이점은 신입이 들어와 정말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교육을 하고 키워 놓으면 바로 나간다는 것이다. 갈수록 더 정성은 더 쏟지만 그 정성과 비례해 신입의 퇴사도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강하게 키워야 하는데 닳을까 엎고 다니고 쏟아질까 손으로 받치고 다녔는데 말이다.

 남은 12월을 나는 만만하게 보았던 것일까? 오늘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출근해서 퇴근하면서부터 잠시 쉬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해야 할 것은 많고 도움을 줄 테니 서두르라는 말을 믿고 있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모른 척했다. 믿지도 않았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았나 싶다. 직급이 높으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좀 져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사과도 없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두리뭉실 넘어가고 나머지 18명은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대단한 단합력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막 한다. 막 한다는 말이 욕을 하고 멱살을 잡는다는 게 아니고 내 할 말은 한다는 의미이다. 참지 않는다.  어차피 월급 받는 직장인은 수틀리면 사직서를 던지면 된다. 다만 추후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해야 한다. 6년 차 직장인이면 어느 정도 자신만의 일에 대한 신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관성'이 그 신념이다. 일관성 있기가 요즘 세상에는 정말 쉽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 쉬운가? 타인에게, 환경에게, 또 나에게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와 자제력을 요한다. 그리고 가끔은 자신의 그 신념을 접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그 일관성에 경의를 표한다.  감정이 행동이 되지 않고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늰 애매함 따위는 싫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타인이 하면 불륜인것 처럼 세상을 여러개의  색안경으로 보는건 너무 이기적이다.

 가끔 6년 동안 나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나 행동들이 갑자기 생각이나 기분을 망칠 때가 있다. 사람도 감정도 그 수명을 다하면 보내줘야 하는데 인간이라 나쁜 감정들은 마음에 꽂혀 절대 빠지지 않는다. 내가 믿고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 지금은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된 직장에서 내가 얼마나 더 버틸지 자신이 없다. 다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공부를 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고 말에서 독기를 빼려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욕을 하면 같이 욕을 하고 인상을 쓰면 같이 인상을 쓰고 물건을 던지면 같이 던진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처는 받겠지만 나는 나는 지킬 뿐이다. 험한 하루가 지나가고 만신창이가 된 나를 어루만지며 내가 나를 챙긴다. 내일 또 내일의 일이 직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일은 오늘 마무리하려 한다. 감정이 행동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나를 상처 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죽을 것 같아도 아침이면 꾸역꾸역 일어나 출근을 한다. 출근의 이유가 돈 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조직이 너무 좋아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했다. 6년 차가 되었지만 연봉은 시급보다 조금 많은 편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간다. 내일도 나는 일관성 있기를...


 오늘도 고생했다. 직장인 신의 손. 세상의 모든 신의 손들이 내일은 평온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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