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게 최고"라는 말 뒤에 우리가 놓친 것들

1995년 취재 수첩이 2026년에게 건네는 질문

by 유수연

[취재파일] 어느 낡은 수첩 속 기록

: 우리가 여전히 ‘입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자칫 꼰대의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30년 넘게 패션의 현장을 지켜온 한사람으로서,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에 비해 조금은 무뎌진 '패션의 기본'에 대해 진심 어린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1995년 12월, 한 일본인 다도 모임에서 받은 초청장으로부터 시작된 뼈아픈 기록이 있다. 당시 안내문 끝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참가 시 복장은 정장으로 부탁합니다.'


후에 그 항목을 굳이 넣은 연유를 묻자,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한국 분들은 모임의 '격'에 맞는 복장 개념이 다소 부족하신 듯해서요..."


솔직히 불쾌했다.

하지만 반박하기 어려웠던 건, 그가 지적한 것이 우리의 ‘수준’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태도’였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병원 위문을 가며 진한 향수를 뿌리거나, 예식장에 해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는 일이 빈번했을 정도로 문화적 과도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것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과 공간에 대한 ‘이해의 부재’였다. 그날 나는 부끄러움에 분노하듯 “포멀웨어,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90년대 중반, '캐주얼'이라는 자유의 탄생


95년의 대한민국 패션계는 격변의 한복판에 있었다. 대기업의 ‘캐주얼 프라이데이’ 열풍과 ‘격주 휴무제’ 도입으로 "이제 양복의 시대는 갔다"는 선언이 곳곳에서 들려오던 시기였다.


편안함이 곧 혁신이자 자유로 추앙받던 시절, 나 역시 그 뜨거운 변화를 지지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복잡했다.

전 세계적인 캐주얼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칫 패션의 본질인 T.P.O(Time, Place, Occasion)마저 '불편한 구습'으로 치부되는 시대의 예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긴, 그때까지 우리는 급격한 성장을 거치며 생존이 급했기에,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정성껏 배우고 향유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효율'만을 쫓아온 우리가 30년이 지난 지금 도달한 패션은 어떤 모습일까.


2026년, 풍요 속의 또 다른 혼란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패션도 더 이상 사치의 대명사가 아닌 '일상'이 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의 패션 현장은 과거의 무질서보다 또 다른 형태의 '혼란' 속에 있다.


효율만을 따지는 풍조가 영혼 없는 옷들을 양산했고, 품격을 함께 고민할 ‘문화’로서의 패션은 희미해졌다. 어쩌면 '풍요 속의 자유'라는 이름의 오해가 ‘패션은 상대를 향한 시각적인 존중의 언어’라는 본질을 잊게 한 것은 아닐까.


안목 없는 소비는 단순히 돈을 쓰는 ‘해프닝(Happening)’으로 끝나지만, 문화를 이해하는 소비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테라피(Therapy)’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은 격조 있는 자리에 나를 정성껏 맞춰가는 과정이고, 그 자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행위다. 형식(Form)을 지키는 것이 구속이 아니라, 그 형식을 통해 내면의 격을 드러내는 품격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낡은 수첩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것


요즘 경복궁에 가면 ‘인생샷’을 위해 존재할 뿐인 국적 불명의 한복들을 본다.

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그 변화 속에 ‘본질’이 빠져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가 아닌 코스튬이라 부른다.

가끔은 그 영혼 없는 의상들이 "나 좀 제대로 입어줘"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미안해질 때가 있다.


하긴, 이제는 상견례나 결혼식 외엔 패션으로 예의를 갖출 장소조차 드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핑계 뒤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패션도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생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패션도 안목이고 교육이다. 이것은 비싼 브랜드를 고르는 기술을 뜻하지 않는다.

내게 맞는 컬러를 고르고, 오늘 방문할 장소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스타일을 고민하는 그 짧은 '정성'의 시간 자체가 교육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멋'과 '품격'을 다시 찾아가는 다정한 시작이 아닐까?


진정한 '품격'이란 결국 '배려'의 문제


결국 패션은 단순히 예쁜 옷을 몸에 걸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간과해 버린 '품격의 자리'를 찾아가는 정중한 여정이다. 상대를 귀하게 대접하고, 그 자리에 선 나 자신의 가치를 의식하는 행위 그 자체가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나는 지금 외출을 앞두고 옷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문득 이 막막한 고민이야말로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이자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정답은 없을지라도 옷장 앞에서 T.P.O에 맞춘 밸런스와 센스를 동원해 보는 것.

그것이 나를 증명하고, 패션으로 타인과 공존하는 삶을 즐기는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30년 전 취재 수첩을 뒤적이다 문득 멈춰 섰습니다.
그때의 뼈아픈 지적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여러분은 오늘 누구를 위해, 혹은 어떤 마음을 위해 옷장을 여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