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봉인하는 법... 그 찬란한 허무에 대하여
"저에게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국보(国宝)에서 주인공이 '가부키(歌舞伎)'밖에 없는 자기 운명을 소개하는 대사다.
야쿠자라는 가장 남성적인 세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여성성을 지향하는 '온나가타(女方)'로 변모하며 마침내 국보가 되어가는 처절한 과정,
핏줄'이라는 숙명과 '재능'이라는 운명사이에서 소년은 하얗게 자신을 지워간다.
영화의 첫 장면은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정원에서 시작된다. 소년은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비극을 목격한다.
그 참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듯 허무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예감으로 다가온다.
핏줄로 내려오는 강함과 남성성을 버려야만 하는 운명, 그리고 별빛처럼 쏟아지는 찬란한 기예의 세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총도 사고 칼도 사고 등뒤에 문신까지 새겨보지만 소년은 복수에 실패한다.
그날 이후, ‘예술에 살고 무대 위에서 죽는 것’만이 소년의 유일하고도 간절한 소망이 된다.
패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 속 의상은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닌 ‘자아를 가두는 화려한 감옥’이다.
가부키 의상의 레이어링과 화장은 곧 비극의 두께인 것이다.
20kg이 넘는 비단옷을 층층이 입는 과정은 육체라는 진실을 압착하여 지우고, 그 위에 ‘여성’이라는 허구의 기호를 축조하는 구속의 미학으로, 모든 것을 한 꺼풀씩 걷어냈을 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미(美)의 허무’다.
하얀 분칠인 오시로이(白粉)와 붉은 눈화장인 메바리(目張り)는 현실의 고통을 지우는 ‘하얀 망각’인 동시에, 붉은 관음적 욕망을 상징한다.
예술의 승계에 있어 이 영화는 '핏줄'과 '재능' 사이에서 끝없이 고뇌한다.
스승은 후계자로 자신의 친아들보다 제자를 선택했다.
스승의 아들을 젖히고 무대 주인공 자리에 오르는 시간.
그는 초라한 방에서 철저히 혼자만의 외로운 화장을 한다.
두려움과 흥분에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핏줄 같은 그 붉은 선을 도저히 그을 수가 없는 참을 수 없는 슬픔. 외로움과 고독의 절정이다.
내게 필요한 건 너의 피야.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나는 너의 피를 컵으로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이 말에 주인공 자리를 뺏긴 스승의 아들이 울분을 참고 라이벌인 주인공에게 붉은 화장을 대신해 주는 장면은 그래서 압권이다.
일본의 미학은 철저하게 묶어두는 ‘결(結): 묶음의 미학’이다.
그 견고한 형식의 균열은 뜻밖에도 청각에서 발생한다.
주인공이 스승의 아들을 젖히고 동반자살을 주제로 한 <소네자키신쥬(曾根崎心中)>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하얀 가면처럼 고정된 얼굴이 예술적 허구를 상징한다면, 무거운 의상 아래서 바들거리며 마룻바닥을 긁는 하얀 버선 '타비(足袋)'의 마찰음은 숨길 수 없는 인간의 실재이자 비극이다.
이상일 감독은 이 마찰음을 극대화함으로써 포장된 형식의 균열을 청각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향해 미끄러지듯 걷는 그 발소리는, 이승의 작별을 고하는 가장 처절한 언어가 되었다.
가부키에서 남자가 여자의 역을 하는 '온나가타'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여성성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남성성을 극한까지 억압하고 거세함으로써 얻어낸 '인위적인 기적'이다.
그 기적의 이면에는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봉헌해야 했던 수많은 미소년의 시린 역사가 서려 있다.
하지만 영화 <국보>가 위대한 지점은 그 외설적인 기원조차 가장 정중한 형식으로 예우한다는 점이다.
붉은 눈화장은 더 이상 외설의 흔적이 아니라, 예술의 정점에 선 자만이 흘릴 수 있는 '비장한 훈장'이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지워버린 텅 빈 상태가 되었을 때 어린 시절의 별빛이 환상처럼 떨어진다.
이 기이한 연금술이야말로 우리가 목격하는 가장 화려한 형태의 비극이 아닐까.
한국의 예술이 맺힌 속을 풀어헤쳐 날려 보내는 ‘살풀이’의 해(解): 풀이의 미학이라면, 일본의 가부키는 비극을 정교한 형식 속에 가두는 결(結): 묶음의 미학이다.
우리네 춤이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몸짓이라면, 가부키의 춤은 죽음으로 가는 길조차 화려한 비단으로 묶어 세우는 비장한 격식이다.
그 지독한 아름다움의 정체는 결국 ‘풀지 못한 채 박제된 허무’가 아닐까 한다.
80년대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가 인체의 곡선을 거부하고 천의 겹 속에 몸을 가둔 중성적 아방가르드로 등장했을 때 때, 파리 패션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해체주의의 뿌리는 이미 에도 시대 이 가부키 무대 위에 있었다.
가부키가 비단으로 남성성을 지우듯
디자이너들은 검은 천으로 여성성을 지운 것이다,
80년대 일본디자이너들의 아방가르드가 ‘세상을 구원하는 침묵’이었다면, <국보> 속 가부키는 ‘나를 지워 예술을 살리는 비장한 제사’였다.
다음에는 80년대 파리를 점령했던 일본 패션 디자이너들의 해체주의와 그들의 전통에 대한 시각과 영향에 대해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