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과 치사랑, '존재의 고독을 묻다'

삼국지'의 야만과 '서유기'의 고독 사이에서

by 유수연

​뉴스 보기가 겁나는 아침이다.

자식이 부모를 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유린하는 보도가 일상이 된 '혐오의 시대'.


윗세대는 아랫세대를 걱정하고

아랫세대는 윗세대를 '패싱'한다.


더불어 가기보다 혼자만의 속도가 절실한 이 시대는 얼핏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실상은 결핍과 공허의 늪에 빠져 있다.


​화려한 스펙을 갖추고도 늘 낭떠러지 끝에서 구조 신호(SOS)를 보내는 세대와,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애달픈 사연을 훈장처럼 읊는 세대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다.


흔히 기성세대는 "가난해 본 적 없으면 불행을 논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독은 배고픔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풍요라는 기름 솥에서 튀겨진 뒤 설탕 가루 속에 교묘히 숨겨진 ' 결핍'에서도 투명하게 피어난다.


과거의 고독이 생존의 문제였다면, 지금 세대의 고독은 내일이 오늘보다 낫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는 '존재의 소멸'에 가깝다.


이 두 고독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린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모든 건 주변이 '정'보다는 '적'이 많음을 가르치고 배운 결과라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말로는 그러면서 아무도 믿지 마라'를 상식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고독과 공허라는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가 김훈은 기성세대가 <삼국지>식 군사 깡패들의 살육을 '의리'로 포장하며 즐겼던 심리를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 명명했다.


전쟁과 배신이라는 비극을 반성하기보다 힘과 권력에만 집착했던 야만의 기록을 영웅담으로 탐독했던 세대.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하무인 한 권위주의는 그 야만의 기록을 정당화해 온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리더십은 달라야 한다는

서유기를 다시 읽자는 글이 생각난다.


기획과 실행의 천재인 손오공, 친화력과 행동력의 저팔계, 묵묵히 내실을 다지는 사오정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의 뛰어난 재능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삼장법사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


개성 강하고 영영 하게 키워진 요즘 세대를 과거처럼 억압하고 누른다고 해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보다 힘이 세서 그들을 이끈 것이 아니듯, 진정한 리더십은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모범'에서 나온다.


​나 역시 젊은 날, 당대 최고의 문필가께서 내려주신 호(號)와 글을 "개뿔 뜯어먹는 소리"라 치부하며 무심히 버리고 잊었던 적이 있다.


이제 나도 그 어른의 나이가 눈앞에 보이게 되니 알겠다.

그 무례함과 무관심이 그분의 마음을 얼마나 기막히게 했을지...


그렇게 치사랑은 없다.

다만 뒤늦게 반성하고 후회할 뿐.


지금의 젊은 세대 또한 그 입장이 되어야만 알게 될 '시간의 법칙'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존경을 강요하기 전에 윗세대가 자신들을 위해 인지해야 할 것은 '내리사랑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것이다.


낡은 관습에 매달려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변화된 시대의 주역들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품격을 갖추는 것 말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이 지독한 단절을 극복하는 방법은 굴종이나 혐오가 아니라 '정중한 거리'에 있다.


​네가 불이면 나는 물이니
너에 대해 묻지 않겠다.
나에 대해 묻지 마라.
정중하게 처음인 듯 남인 듯

How are you.

(황혜경,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상극' 중)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의 입장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윗세대는 적당히 권위를 내려놓고 책임 있는 모범을 보이며, 아랫세대는 지나온 세월을 무작정 혐오하기보다 그들의 지나온 세월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지키는 것.


다소 서글프지만 그런 관계가 살아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고독을 건너 정중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기거나 지거나

처음에 나는

영롱한 너를 갖고 싶었던 것인데

처음에 너도 그랬겠지. (황혜경 상극 중)


자신과의 불화와 화해하고 싶은

맑고 고운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