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조차 예술이 되는 곳 강화도 붉은 이야기

나부상의 지독한 형벌과 광성보의 핏빛노을까지, 꼬랑지 내리고 감사할 일

by 유수연


단풍으로 온 세상이 불타오르는 계절. 불쑥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어 지는 날.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다’라는 생각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어디 가깝고 안전한 곳 없을까?


그래서 결정한 것이 강화도 & 교동. 분위기 있는 카페도 많고 일몰이 멋진 해변도 많고, 서울에서 가까운 섬으로 낭만은 낭만대로 현실은 현실대로 챙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화는 군청에서 고려의 수도 개성시까지 직선거리로 25km, 조선의 한양까지는 직선거리 48km.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치열한 수난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은 현지인들이 아침저녁 오가는 산책길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강화 전등사의 역사는 무려 1600년.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삼랑성'이 절을 감싸고 있고 유형무형 문화재 포함해서 사찰에 있는 모든 건축물과 유물, 유적지 전체가 보물이고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조선시대, 불탄 대웅전 재건 작업을 하던 대목장이 자신의 돈을 떼어먹은 주막집 여자의 모습을 처마 밑에 구겨 넣어 부처님께 천년 회개를 위탁했다는 나부상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론, 이런 조각상은 불교의 가르침을 사방에서 수호하는 ‘호법 신장’ 일 가능성도 있다지만, 그것보다 더 세게 먹혀들어 가는 건 적당히 통속적인 스토리 테일링. 남에게 죄짓고 살면 안 된다.’라는 살벌한 교훈일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천년만년 저리 원숭이 같은 모습으로 박제를 해놓다니…. 사방에 처박혀 한 손, 두 손, 각 방향으로 손을 바꿔가며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진짜 안습 그 자체. 옛날 사람들의 발상이라서 그런지 너무나 직관적이다.


굳이 이렇게 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전등사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사찰 깊숙한 곳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 등을 보관해 온 '정족사고'가 있고, 대웅전과 약사전에는 병인양요 참전 병사들의 참전을 결의하는 이름들이 낙서처럼 남아 있으며, 병인양요 승전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병인양요의 치열했던 전투에서 승리에 찬 모습으로 걸었을 정곡 산성을 걸어본다. 밤도 낮도 아닌 산속.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풀숲 사이로 거미 한 마리가 생명의 잔해들을 앞에 두고 졸고 있다.


그렇게 다이내믹하게 활약했던 스님들의 무용담도 사라진 전등사에는 평화롭고 한적한 사람들의 추억만이 소원을 담은 돌탑처럼 쌓여간다.

발길을 옮겨 둘러보는 광성보는 서해안 중에서도 조수간만의 차가 유난히 심해 바다를 건너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너무 거칠고 험한 물살 때문에 당시 세계최강의 몽골이 강화도에 직접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


일단 해안선이 온통 산과 절벽으로 너무 복잡하고, 사방이 갯벌이라 상륙하기 까다로운 지형도 그렇지만, 예성강과 조강이 강화도 인근 해역으로 유입되는 시기를 잘못 타면, 무조건 용왕님과 하이 파이브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겨울에도 물이 얼지는 않고 유빙이 둥둥 떠다니니 겨울 전쟁과 기마전이 장점인 몽골인들에게 있어서 강화도는 그야말로 난공불락 요새였다.


강화도에 진입을 위한 지형이 얼마나 험했는가를 보려면, 일단, 강화도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산이 있는 부분을 섬이라고 생각하고 간척사업에 의해 평지가 된 땅들을 ‘물속’이라 보면 대강 예상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강화도 특히 교동은 잔인한 폭군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왕족들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조선 최대의 '머저리 왕'이었던 인조는 이 강화도와 남한산성을 와리가리 해가며 글로벌 호구 짓을 하기도 했고,


훗날 철종으로 등위 한 강화도령도 크고 작은 역모에 연루되어 이곳에서 유배와 사면을 반복하다가 극적으로 강화도를 빠져나가 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병인양요에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에 이르기까지 강화도 땅의 백성들이 당한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게다.


신미양요 때는 미군이 쏘아 댄 화포에 350명의 조선인이 죽고 미국은 꼴랑 3명 사망으로 끝났다니…. 이 정도면 전쟁이 아니라, 그냥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수준 아닌가?

영문도 모른 채 삶을 송두리째 다 빼앗긴 민중들. 생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선택의 길은 몇 가지 없었을 거다.


배신할 길이 있으면 배신하고 궁지에 몰리면 좀 덤벼보고 그도 저도 할 수 없으면 죽는 것. 그때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을 50구씩 모아서 7 묘의 무덤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왠지 삶이 너무 부질없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귀갓길에 강화의 군조인 저어새를 형상화한 전망대를 들러본다.

눈이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알 듯하다. 아찔해서 내려다볼 수 없었던 유리잔도 스카이웨이에서 포토타임이 벌어진다.


무서워도 사진은 찍고 싶어 엉금엉금 기어가서라도 날려보는 하트 하트!

해가 지는 횟집에서 먹고 마시고 석양까지 보고 있자니 모든 것이 지는 해처럼 꿈같다. 멀리서 "살기 바빠 가는 세월, 모르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이 나이.


그래도 인생의 참맛을 제대로 아는 지금 내 나이가 제일 좋더라"라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생각해 보면, 지금 가슴 한편을 스치고 지나는 슬픔도 우울도 다 허상이다.


그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은 이들이 그 심정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치열한 피의 시대가 있었고, 무참한 희생들이 있었고, 이렇게 평화가 선물로 남았다는 것뿐. 꼬랑지 팍 내리고 무조건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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