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까지 뭐 했어?
딸아이에게 물었다.
오늘은 그래도 학교에 들어가 2교시까지 있다가 조퇴를 했다.
"위클래스에 있다가 왔어."
결국 교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어쨌든 학교 안에는 들어갔고, 혼자서 담임선생님을 기다리며 교무실에 앉아있었고, 전담선생님께 수행평가지도 받아왔고, 위클래스에 찾아가 상담까지 받고 왔으니, 그 정도면 됐다.
"대견하네."
그게 정말 대견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딸아이 입장에서는 불안을 견디며 겨우 버텨낸 시간이다.
그러니 대견하다고 말해줘도 되겠지.
마음이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해할 순 없지만 네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지.'
를 숨 쉬듯 외우며 시간들을 버텨내는 것이다.
그 와중에 타인에 대한 수용 가능 정도가 매우 낮은 남편을 토닥거려 가면서.
남편은 종종 자신을 '이 집에서 유일한 정상인'이라고 부른다.
딸아이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나는 우울증과 adhd, 아들은 adhd를 가지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저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상담사가 '정서적으로 굉장히 어리고 타인에 대한 수용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임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약 안 먹으면 정상.
남편의 단순한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때때로 나는 그런 단순함이 부럽다.
아이가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었음에도 남편은 여전히 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학교는 누구나 가기 싫은 거야."
그 정도의 이해가 전부다.
왜 개구리가 무심코 던진 돌에 죽는 건지 알지 못하고, 그건 개구리가 너무 작아서 그런 거라며 개구리를 탓할 뿐이다.
남편은, 다친 개구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남편이 그런 사람임을 알기에, 나는 애당초 남편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던져버렸다.
집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학원 갈래."
미술학원은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다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닌 학원이다.
전학을 왔으면서도 학원만은 바꾸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친정엄마가 차를 태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사실 그렇게 하겠다고 한 건 친정엄마였다.
이제야 힘들어하면서 후회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헤어짐은 아이가 겪었어야 할 감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앗아버렸다.
물론 지금 딸아이가 부모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 미술학원 선생님이고, 미술학원 선생님도 그림치료를 염두에 두고 아이를 지도해 주고 계셔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애초에 아이에게 상실이라는 감정을 겪을 기회를 주었더라면, 아이도 나도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만약. 만약.
수많은 만약들.
하지만 만약은 필요 없다.
만약은 나를 찌르는 가시다.
뒤돌아보지 말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눈앞에 있고, 과거를 뒤돌아보며 잘못을 되짚어 보는 일은 할 만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