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키우는 나, 국밥을 먹는 아이

by 숨비소리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화원에 들렀다.

마음이 불편할 땐 식물이 보고 싶어진다.

꼭 무언가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 푸른 꽃을 피운 식물 하나를 데려오고야 말았다.

내 마음이 불편해질 때마다 나의 베란다 정원은 넓어져만 간다.


아이는 오늘도 등교를 하지 못했다.

4일 중 3일.

아이가 이번 주에 학교에 가지 못한 날이다.

얼마 전 친구와 다툰 이후로 또다시 시작된 등교거부.

상담사는 친구와의 다툼이 트라우마를 건드린 거라고 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은 조상님들 나름의 트라우마에 대한 표현이었을까.

아이는 솥뚜껑의 그림자만 봐도 움츠러든다.


나는 아이에게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감은 할 수 없어도 '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는 있다.

공감, 공감, 그놈의 공감.

다들 말은 쉽게 한다.

하지만 나흘 중에 사흘을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으면 공감해 보라지.

제삼자의 입장 말고, 부모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겐 가능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그저 말할 뿐이다.


"그래. 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집에서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기운이 빠졌고 병원에서는 의사에게 분통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기운이 빠졌다.

의사는 나를 몰아붙였다.

아이를 빨리 퇴원시킨 것은 잘못이고 엄마가 애쓰는 건 알겠지만 그래봐야 시간만 낭비하는 거고 재입원이 답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의사가 말을 하는 동안 아이가 내 표정을 살폈다.

'엄마 또 화났겠네.' 하는 표정이다.

나는 입으로는 "네, 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같이 남의 심정 헤아릴 줄 모르고 되는대로 내뱉는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네.' 하며 그 의사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 생각을 눈빛으로 드러내고 있었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병원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약이 효과를 보고 있으니 함부로 바꿀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선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밖에.


식물을 사고 돌아오는데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국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한 번도 선택한 적 없는, 먹어본 적조차 없는 메뉴였다.

나는 두말도 하지 않고 근처 유명한 국밥집으로 향했다.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자기가 알아서 간을 맞추고는 밥을 말더니 이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맛있다."


"그래? 그럼 다음번에는 아빠랑 같이 오자."


딸아이가 국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분명 좋아하겠지.


그나저나 아이는 대체 어디서 국밥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까?

새로운 음식은 아예 먹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국밥에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걸까?


그래. 딸아이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지.

그러니 언젠가는 친구와의 다툼이 아무렇지도 않아 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집에서처럼 즐겁게 웃고 까불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까 지치지 말자.

적어도 아이의 그 웃음이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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