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흔들리기 전에

by 숨비소리

2학기에도 휴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진단서를 끊으러 다니는 병원에 갔다.

겨우 2개월 전에 6개월 이상의 휴식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진단서가 또 필요하단다.

이번에는 치료기간이 2026년 2월 28일까지라고 명시된 진단서가.

헛웃음이 나왔다.

우울증과 번아웃이 언제 나을지 의사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휴직 중 그 사유가 소멸한 때에는 즉시 복직해야 한다.'라는 항목 때문이겠지.

2학기를 통째로 휴직한다고 해서 기간제 교사를 구해놨더니 중간에 느닷없이 '나 이제 다 나았으니까 복직할게요.'라고 하면 곤란해진다.

하지만 의사가 2026년 2월 28일까지 치료가 필요하다고 명시해 놓으면 그전에 다 나았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제출한 서류 때문에 복직이 불가능할 테지.


황당해하는 의사에게 교직 사회의 특수성을 설명하며


"2026년 2월 28일 이전에 복직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종종 문제가 되는 것이 명절 전에 복직했다가 명절 보너스 받고 다시 휴직하거나 방학 때 복직해서 월급 다 받고 개학하고 다시 휴직하는 행위들인데, 나는 그런 짓을 할 마음이 없다.

돈 몇 백이 크긴 하지만, 그걸로 양심을 팔 수는 없다.

내가 개인사정으로 휴직을 해야 한다면 내가 받지 못할 성과급, 명절상여금은 내가 감당해야 할 손해다.

겨우 숨 쉬며 존재하는 일 정도나 할 수 있는 상태로 무슨 복직인가.

아이들한테도, 학교에도 민폐다.


치료기간이 2026년 2월 28일이라고 명시된 진단서를 제출하라는 말이 굉장히 모욕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교육청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


의사는 다행히 말이 잘 통하고 나에게 의적이라 그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적어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다.


차에 앉아 진단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일 제출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 생각이 났다.

5월에 휴직을 하는 바람에 어린이날도, 스승의 날도 함께 하지 못했는데 휴직 중인 나에게 감사 영상을 만들어 보내주기도 하고 어린이날 기념 체육대회에서 자기 팀 이기고 있다고 영상통화로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아이들.

2학기에 꼭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미안함이 밀려왔다.


'제출하지 말까. 복직할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직하기 직전, 아이들이 애교를 떨어도 제대로 웃을 힘조차 없던 나였다.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낫다.


'내일 바로 제출해 버려야지.'


더 흔들리기 전에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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