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지만 딸아이의 등교거부가 심해지는 월요일은 더욱 힘들다.
오늘도 딸아이는 등교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를 가든 말든 내버려 둬 보세요. 단, 결석으로 인한 책임은 네가 지는 거라고 하시고요."
상담사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소파에 누워 휴대폰으로 신문기사를 읽었다.
사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잠시라도 딸아이에게서 마음을 떼고 싶을 뿐이다.
"준비 다 했어."
한참을 기다리니 딸아이가 교복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왔다.
이미 늦은 시각이다.
오늘은 웬일로 수월하다.
하지만 교문 앞, 아이는 차 안에 앉아 또다시 망설인다.
오늘도 노란 호박꽃 위로 배추흰나비가 나풀대며 날아다닌다.
저렇게 흔하고 보잘것없는 풍경마저 평화로워 보일 줄이야.
마음이 전쟁터일 땐 사소한 일상마저 아름답게 느껴진다.
10여분을 기다린다.
아이는 여전히 꿈쩍도 않는다.
"갈 거면 가고 안 갈 거면 말해."
특별히 화가 난 건 아니지만 말투는 딱딱하다.
아이는 나의 약점을 잘 안다.
아이에게 있어서, 부드러운 말투는 엄마의 마음 어딘가에 물러터진 부분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조퇴해도 돼? 점심은 먹고 나서."
"알아서 해."
아이가 차에서 내려 학교를 향해 걷는다.
오늘은 특별히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어린 시절의 딸아이가 생각났다.
한 여름날, 바다에 드러누워 깔깔 거리며 행복하게 웃던 내 딸아이.
그랬던 아이가 어쩌다 저렇게 변해버렸을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대신해 캐나다 ETA를 신청한다.
키보드를 치는데 손이 저릿저릿하고 미약하게 떨려온다.
'몸이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해댄다.
목구멍까지 무언가가 밀려 올라온다.
토하기 직전 구역질이 멈춘다.
콧물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씻는다.
전화가 울린다.
학교다.
나는, 2학기에도 휴직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아침까지도 내게 휴직연장이 필요한지 고민했는데, 구역질이 내 대신에 결정을 내려주었다.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니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은 불가능하고 내일 와서 무한정 대기하는 수밖에 없단다.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 마음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
병원 예약 한 번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남편에게 휴직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역질이 나서 잘 먹지 못해 기력이 없는 지금 상태로 아이들 병원과 상담까지 다니며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남편은 내 아픈 몸이나 마음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서 다 하지 말고 애들 병원 가는 거는 부탁해. 연차 쓰면 되니까."
라고만 말한다.
병원에 보내놓으면 의사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고 오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휴직을 말리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내일의 일정을 정리해 본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병원으로 직행해 무한대기.
진단서 발급받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1시간 거리의 병원에 진료 보러 가기.
'꼬박 하루를 다 날리겠네.'
이런 일정이 매주 한, 두 번 정도는 있다.
그때마다 수업을 뺄 수도 없고 매번 남편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휴직 연장하길 잘했네.'
아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게 쉼이 필요한 거였다.
또다시 고장 나버린 내 위장이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