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기열 KI YULL YU Jan 02. 2018

껀터시는 지금 봄~!

베트남 껀터시는 한 낮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린다. 그런데 보는 곳마다 꽃이 피고 가는 곳마다 새 잎이 난다.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고, 8~10월보다 생활하기에 좋다. 아쉬운 대로 지금 날씨만 같으면 좋겠다. 껀터시는 식물 생리현상만 보면 지금 봄 같다. 

근무하는 한-베 인큐베이터 파크(KVIP)청사 앞과

안쪽에 배링토니아(아직 한글이름을 찾지 못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학명 Barringtonia acutangula, 베트남 이름 Cây Lộc Vừng)가 있다. 이 나무에 새잎이 나더니 꽃도 핀다. 청사뿐 아니라 살고 있는 주변에서 자라는 배링토니아도 마찬가지다. 

KVIP 의 병솔나무

병솔나무에도 붉은 꽃이 피었다. 꽃이 병을 씻는 솔 같아서 붙여진 한글이름이다. 호주에서 이 꽃을 처음 보았을 때 여우꼬리 꽃이라고 농담하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이 떠올라 이 꽃을 보면 기분이 좋다.


길가의 빵나무는 비온 뒤 죽순처럼 새잎 봉오리를 시원하게 하늘로 뽑아 올려 애기 우산만한 새잎을 펼친다. 마치 가슴을 펴고 양팔을 활짝 벌리고 길손을 반기는 모습이다. 그런 잎 사이로 둥근 어린 열매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란타나는 흑진주 같은 열매와 함께 분홍, 노랑, 주황, 빨강, 보라 등 오색 꽃으로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해준다. 코시니아도 덜 익은 녹색 열매, 익은 빨간 열매를 함께 매달은 채 하얀 꽃을 함께 피고 있다. 


불꽃나무(Flame tree) 꽃은 아가씨의 빨간 입술보다 진하다. 멀리서 보면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다. 지는 꽃잎보다 피는 꽃이 더 많은 지 항상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호치민 동상이 있는 공원의 꽃, 현지인은 Flying rose라고 함

시내 중심인 시청과 박물관 사이의 작은 공원에는 부겐빌레아가 빨강, 연노랑, 흰 색 꽃을 함께 피워 지나는 시민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물론 식물학적으로는 꽃으로 보이는 빨강, 노랑, 흰 것은 꽃이 아니고 꽃싸개(苞)이다. 


시내 여행자거리와 호치민 동상이 있는 공원에도 이름 모르는 여러 가지 꽃들이 활짝 피어 공원을 화원(花園)분위기로 살려준다. 산책하거나 여행 온 이방인을 더욱 기쁘게 한다. 


이렇듯 나무와 풀들이 꽃이 피고 새잎이 나는 것을 보면 껀터시는 봄이다. 새순이 자라고, 새잎이 나며, 꽃이 피는 때를 봄이라 한다면 껀터시는 지금 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일 뿐이다. 열대에서는 연 중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고 새잎이 난다해서 지금을 봄이라고 하면 눈(雪)이 없는 데 하얀 가루를 보고 눈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코미디일 수 있다.


열대 나무와 풀의 생애는 온대에서와는 다르다. 봄인 3월이 돼야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게 아니다. 연 중 꽃피고 열매 맺는다. 온대 지역 나무와 풀의 생애와는 천지차이다. 여기 식물의 일생을 온대인 한국의 것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식물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들의 일생은 전혀 딴판이다. 아마도 생육환경조건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열대엔 겨울이 아예 없고 봄, 가을이 따로 없다. 항시 여름이다. 식물은 년 중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껀터시는 지금 봄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지 않다. 그건 순전히 온대지역 봄의 현상일 뿐이다. 우겨서 봄이라 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지 객관적이지는 않다. 


열대는 연 중 꽃이 피고 새잎이 나기에 이점만 보면 항상 봄이다. 연 중 열매를 맺고 수명이 다한 잎이 낙엽으로 지기에 이점에서 보면 항상 가을이다. 잎이 무성한 점을 보면 연중 여름이다. 그러나 겨울은 없다. 그래서 잎이 진 나목(裸木)이나 그 위에 눈이 쌓인 풍경은 볼 수 없다. 따라서 겨울이 없다는 것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사람이나 사물을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됨을 식물은 말하고 있다. 판단의 잣대는 객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열대지역에서는 식물은 연 중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며, 온대지역에서는 식물은 봄에 주로 꽃이 피고 새잎이 나며 가을에 주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객관적 기준이다.


반대로 주관적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식물은 봄에 꽃이 피고 새잎이 나며 가을에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이다. 이것은 열대지역의 식물 생활사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4계절이 뚜렷한 온대지역에서 산 사람의 식물 생육에 대한 기준일 뿐이다.

하우강 강 옆 나무의 꽃같은 새잎, 현지인은 Khuynh diep 나무라고 함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심정적으로 껀터시의 지금을 봄이라 생각하고 즐기고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봄 꽃바람이 불고 있다며 콧노래를 부른다. 사실 주말엔 꽃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우강변을 찾아가곤 한다. 여기서 꽃보다 아름다운 빨간 새잎과 대화를 하면 속이 후련하다.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사물과 환경은 어떻든 간에 자기 느낌은 그럴 수 있다. 하여 껀터시는 지금  봄! 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느끼며 살고 있다. 그만큼 봄이 그리운지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과 만나면 예술이 되는 코롱 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