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열의 일상다반사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나 되는 냥, 나는 딱 스마트폰 하나 들고 홀로 낯선 타슈켄트시를 산책했다. 거리는 노거수(老巨樹)가 우거져 숲 터널을 이루었다. 전정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았다. 거리와 공원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그다지 춥지도 안 했다. 거리의 안내판, 건물이나 상가의 간판 등은 거의 우즈베크어로 되어 있었다. 거리를 걷거나 공원을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곳 사람들은 코로나에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 걱정도 별로 안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스크 쓴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왜 그럴까? 서울처럼 사람이 밀집하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이슬람국가라 그런지 성탄절 분위기는 별로 나지 않았다.
나는 2021.12.18일 오후2시부터 5시까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롯데호텔(Lotte City Hotel Tashkent Palace) 주변을 혼자 산책했다. 몸에 지닌 것은 딱 스마트폰 하나뿐이었다. 폰에는 마스터 신용카드, 미화30달러와 옛 명함 몇 장이 있었다. 복장은 서울에서 입고 간 그대로 겨울등산복 블랙야크(Black-Yak) 고어텍스-자켓과 몽벨(Mont-bell)바지를 입고, 신은 목이 있는 K2등산화를 신었다.
타슈켄트시는 북위41°16′00″, 동경69°13′00″에 위치해 서울보다 북쪽에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기온은 서울보다 높은 2~8℃이었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롯데호텔은 타슈켄트 중심이자 번화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거리는 한산했다. 걷는 사람은 어쩌다 한 둘 보일 뿐이었다. 자동차는 그런대로 많이 오갔다. 20층 이상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처럼 높은 빌딩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지 않았다. 대신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사이사이에 도로와 자그만 공원을 두어가며 서 있었다.
큰 도로 옆이나 좁은 길옆이나 오래된 큰 나무(老巨樹)가 길을 따라 숲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전정은 거의 안 하는 듯 보였다. 길 위에 나뭇잎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오래 전에 낙엽이 지고 청소를 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호텔 앞 길 건너 멀리 보이는 건물에 갔다. 타슈켄트에서 관광명소로 알려진 Alisher Navoi Opera and Ballet Theater(The Opera and Ballet Grand Academic Theater)였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안은 보지 못했다. 앞에 분수대가 있는데 분수는 되지 않았다. 안내판에는 2022.01.03.일까지의 공연 일정이 영어로도 적혀 있었다.
아이와 함께 놀러온 30대로 보이는 엄마가 아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와 엄마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May I take a photo of yours with a child?’ 라고 물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못 알아들었다. 나는 몸짓으로 사진 찍는 시늉을 했더니 아주머니는 이해하고 스마트 폰을 주었다. 나는 엄마와 아이 둘이 서 있는 모습을 멀리서, 가까이서 나보이 극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극장 앞을 지나가니 작은 길옆으로 큰 건물이 있었고, 거기엔 꽃집, 휴고 보스(Hugo Boss) 매장 등이 있었다. 창에 붙은 ‘Sale 50%’ 글귀가 눈에 띄었다. 연말인데도 여기도 장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건물을 따라 큰 도로로 나오니 롯데호텔 주차장 들어가는 곳과 만났다. 나는 오른쪽 아래로 더 걸었다. 큰 건물이 있었다. 건물이름이나 간판이 우즈베크어로 되어 있어 안내판 등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니 역사박물관이었다. 박물관 주변이 공사 중이고 시간도 많지 않아 그냥 지나갔다.
그 옆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동상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름이 우즈베크어로 되어 있었다. 공원을 지나가니 아름다운 건물이 나왔다. 또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로 위치 찾기를 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1세의 손자인 니콜라스 콘스탄티노비치 로마노프 대공(Grand Duke)이 살았던 궁전이었다. 타슈켄트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가장 낭만적인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을 보니 큰 길 건너 독립광장(Square of Independence)이 보였다. 구경을 더 하고 싶었으나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고 말과 글도 안통하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한 볼록 옆으로 더 걸어간 다음 되돌아오니 롯데호텔 뒤쪽으로 나왔다.
호텔 옆 길 건너편을 보니 큰 공원이 보였다. 지하도로를 건너가 공원을 산책했다. 거기에도 한두 명이 벤치의자에 앉아 있거나 산책을 할 뿐 아주 한산했다. 다시 스마트폰 구글 지도로 위치 검색을 했더니 Alleya공원으로 되어 있으나 직접 안내판이나 표지판을 못 보아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공원 옆엔 ‘Fish and Bread’ 식당이 있었다. 그 옆 거리에서 책을 파는 할머니가 이색적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5시쯤 되었다.
딱 말 한 마디하고 그저 눈으로 보고, 귀 기울이고, 손으로 만지고, 사진을 찍으면서 3시간 정도 이국의 낯선 거리를 혼자 걸은 셈이다. 그래도 좋았다. 스마트폰 힘이 컸다.
세상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으며, 귀 기울이면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고, 존재하는 물체를 손으로 만지면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것, 특히 모든 생명체와 수평적 관계로 구성원의 하나로 만나면 더욱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