껀터엔 지난 1월 24일 비가 온 뒤 98일 만인 5월 2일에 비가 왔다. 기다리는 비 탓인지 어느 비보다 반가웠다. 더욱이 찜통 무더위가 한 풀 꺾일 것 같아서 더 좋다.
무더위가 무섭다. 4월 초까지만 해도 참을 만하던 더위가 중순 접어들면서부터는 참기 어려워졌다. 하루 온도가 26~35도다.(스마트폰에 알려오는 껀터 온도기준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덥고,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도 덥고, 말라 타들어가는 풀밭을 보아도 덥다. 시내의 좁고 긴 골목(Hem)을 보노라면 답답함이 더해져 더 덥게 느껴진다. 한 낮의 태양과 그 아래는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태양이 이글거리고 불탄다는 말이 실감난다. 에어컨, 냉장고, 얼음 등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차게 한 것을 빼고는 만물이 덥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이런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산다. 더위 견디는 힘이 크기 때문일까? 아마 유전적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혹시나 이런 자료가 있을지 몰라 찾아봤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실제로 없다면 이 분야 전문가가 이곳 사람들의 더위 견디는 힘이 유전 탓인지 아니면 환경 탓인지, 두 가지 요인의 영향이 같은지 아니면 어느 쪽 영향이 더 큰지에 대해서 연구해봤으면 한다. 어쩜 재미나고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에어컨이나 얼음 등 이화학적인 문명의 이기와 물질을 이용하지 않고 생명 자체가 더위와 추위를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더위 탓인가? 생활풍습이 독특한 게 하나 있다. 남자들이 집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웃통을 벗고 지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 앞이나 거리에서 남자들이 웃옷을 벗고 친구들과 음식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도심 공공장소에서는 다르다.
그렇게 안 오던 비가 5월 2일 비가 온 뒤부터는 매일 비가 한 번씩 잠깐 온다. 마른 더위는 가고 습한 더위가 온다. 5월 5일 습도는 78%다. 꿉꿉하다. 끈적끈적하다. 그리고 역시 덥다. 냉커피 한잔 마시면 마실 때만이라도 조금 괜찮다.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 해 10월 옷장에 넣어둔 신사복을 입으려고 옷을 꺼냈다. 이게 웬일? 청색 바지가 흰 가루를 뿌려놓은 듯 했다. 곰팡이가 슬어 하얗게 변했다. 간단한 솔질로는 곰팡이 제거가 안 되어 결국 세탁을 한 후 다리미질을 했다. 그 뒤부터는 햇볕이 좋은 날 가끔 옷장의 옷을 꺼내 햇볕을 쐰다.
껀터는 지금 건기(乾期, Dry season)가 가고 우기(雨期)가 시작되었다. 식물은 비를 맞으면 신이 나는 모양이다. 나뭇잎들이 생기가 돌고 초록빛깔이 더 돋보인다. 한국의 5월 신록만은 아니어도 나뭇잎들이 매끄럽고 싱그럽다. 초록 잎들 사이사이로 햇빛과 바람이 지나다니며 나무들의 근지러운 곳을 긁어준다. 나무들은 좋다고 웃으며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새털구름, 뜬 구름을 보여준다. 그런 나무 아래에 걸어놓은 해먹에 누워 메콩 델타의 더위를 벗 삼아 껀터의 자연 풍광을 즐긴다. 이런 게 사는 재미 아니겠는가?
‘늦어서 그렇지 때가 되면 비는 오는 거구나!’
98일 만에 내리는 비를 보며 한 독백이다.
비는 올 때 되면 온다. 그러니 비 오기만 기다리며 덥다고 투덜대는 것은 바보짓이다. 기다리다 소중한 인생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즐겨야 한다. 인생도 세상도 받아들이며 즐기는 자의 것이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