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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열 KI YULL YU Dec 17. 2018

베트남에선 서명은 파란 색으로만 한다

베트남에서 공문서, 계약서, 영수증 등에 서명할 때 검정 색은 안 된다. 반드시 파란 색으로 해야 한다. 원본 확인을 쉽게 하고 복사를 통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과 판이하게 다르다.

When signing official documents, contracts, receipts etc. in Vietnam, black color is not acceptable. It must be blue. It is said to facilitate the verification of the original and to prevent forgery by copying. It is quite different from Korea.    


한국에는 서명을 하는 글씨의 색엔 제한이 없다. 있다면 파란 색 보다는 검정색을 선호한다. 한국인은 아주 옛날, 그러니까 종이 또는 종이와 유사한 것에 글씨를 써서 기록한 때부터 붓글씨를 즐겨 써온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벼루와 먹으로 검정색 먹물을 만들었지 청색 먹물은 만든 경험이 없고 듣거나 본 기억도 없다. 문서나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고문서(古文書)에 있는 수결(手決, 지금의 서명에 해당) 역시 검정 색으로 했다.


꿀롱 벼 연구소와 공동 벼 생산 시험연구사업 계약서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서명은 청색으로만 한다. 이 사실을 안 것은 이곳에서 16개월 이상 생활한 뒤의 일이다. 꿀롱 벼 연구소와 공동으로 메콩 델타지역 벼 생산에 대한 시험연구 사업을 추진하려고 2018년 11월에 꿀롱 연구소를 방문하여 업무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 뒤 얼마 지나 담당자가 바뀌어 계약서를 보완했다며 우편물로 보내오면서 다시 서명을 부탁했다. 그래서 그땐 내가 가지고 있던 모나미 검정 볼펜으로 수정된 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EMS로 우송을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 서명을 다시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서명한 글씨 색이 검정색이어서 푸른색으로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듯 좀 멍했다. 전혀 의외의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왜 푸른 색으로만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원본과 복사본의 확인을 쉽게 하고, 옛날부터 관행으로 다 그렇게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벼 파종 현장을 관찰하려고 연구소에 간 김에 계약서에 청색 펜으로 다시 서명을 해준 일이 있다. 

스마트 폰 충전 영수증

이런 일이 있은 뒤 베트남에 와서 받은 문서, 거주증, 영수증, 월세계약서 등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한 결 같이 사인(서명)은 모두 청색이었다. 서명 란에 내가 한 서명까지도 파란 색이었다. 궁금하여 알아보니 기관, 은행 등에 비치하는 고객용 펜이 모두 청색이기 때문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뿐만 아니다. 세미나, 워크숍, 포럼, 기념식 등 행사에서 가끔 기념품으로 받은 볼펜을 유심히 보았다. 역시 모두 청색이었다. 검정 펜의 치욕이 드러났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대학교, 초중고등학교 학생들도 공부할 때 대부분 청색 펜을 쓴다고 했다. 일과 후에 껀터 대학생에게 베트남어를 배우는 데 그 학생도 파란 펜을 쓰고 있다. 빨강, 검정 펜은 강조하거나 특별한 표시를 할 때 쓴단다. 


시험 볼 때 답안지 작성도 청색 펜을 쓴다고 한다. 검정 등 다른 색 글씨를 쓰면 안 된다고 한다. 


청색 펜을 많이 쓰는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이유는 잘 몰라요. 예전부터 그랬어요.”였다. 전통과 관습이 그렇고, 관습을 따를 뿐이라는 뜻이다. 이런 것을 보면 관습만이 아닌 법규로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나 아직 확인은 못했다.


어쨌든 다른 문화, 전통, 관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서로의 협력과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문화 등을 안다는 것 자체부터가 어렵다. 베트남에서는 서명을 파란 색으로 한다는 것을 아는 데 16개월이 걸렸을 정도니까 말이다. 나아가서 그런 다름을 아는 데 그치지 말고 받아들이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베트남에 와서 파란 색으로만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전통과 관습의 위력이 대단함을 실감했다. 한 번 세워진 전통과 관습은 무서운 지속력과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며 생활에 크고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전통과 관습은 바르고 선하며 아름다워야 하고, 그럴수록 좋다. 국가나 사회는 물론이고 개인 역시 어려서부터 좋고 멋지며 가치 있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Having seen them signing only in blue color since coming to Vietnam, I realized that the power of tradition and custom was great. Once established, traditions and customs have the tremendous lasting power and the rippling effects so that they impact on life great and much. Therefore, traditions and customs should be right, good, and beautiful. And the more such they are, the better. It is the reason why individuals, as well as nations and societies, should develop good, wonderful and valuable habits from an early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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