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장

십자가-완전한 제사

by yukkomi

제사의 역사


인류 역사 속 고인돌, 피라미드 같은 문명 유적을 보면, 문자가 생기기 전부터 제사 제도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왜 제사를 지냈을까?

인간은 본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한자 ‘인간(人間)’이 보여주듯, 인간은 ‘사람(人) 사이(間)’에 존재하는 관계적 존재이다.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함께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느끼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이러한 본성은 제사의 기원에서도 나타난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공허를 경험했을 때,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려는 욕구는 제사를 만들어 낸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죽은 자를 위한 제사도 대상은 다르지만, 이 제사 역시 관계를 끊기지 않게 붙들려는 인간의 동일한 본성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인간의 연약함 역시 제사와 종교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인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을 갖고 있다. 예상되지 않는 삶 속에서, 길흉화복이 자신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의지하며, 그 관계를 유지하고자 오랜 시간 동안 제사와 예배를 드려왔다.

결국 제사는 인간의 연결되고자 하는 본성과 연약함, 그리고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욕구가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제사


인간 최초의 제사는 아마 가인과 아벨의 제사였을 것이다. 성경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장면을 보여 주는데,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지금의 나는, 하나님께서 ‘피의 제사’를 받으신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하나님이 단순히 '피흘림'을 좋아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며, 생명 없이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생명의 피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은 제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제사의 의미는 잊은 채, 피의 제사 자체에만 집중했다.

아벨의 제사 이후, 이 피를 흉내 낸 수많은 제사가 생겨났다.

제사가 신으로부터 바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자,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희생이 신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 믿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제단을 높이 쌓고, 수많은 동물의 피를 흘렸으며, 심지어 인간의 피까지 흘리며 신의 마음을 달래려 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듯했지만, 인간이 스스로 만든 제사는 하나님의 성품을 미신적 수준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인간의 길흉화복을 마음대로 다루며, 인간의 소중한 것을 희생해서라도 달래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멀었고, 인간의 이런 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나님이 주신 제사


구약의 제사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의 오랜 노예 생활로 인해 자유인으로서의 인격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그들은 노예법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난 후,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아직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최소한의 질서유지 장치였다.

또한 공동체 속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잃은 인간이 이런 율법도 지키지 못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은 율법과 함께 제사 제도를 주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제사는 인간이 하나님을 달래기 위해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죄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 제사로는 하나님과의 편안한 관계를 이루어 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제사로는 인간 스스로 심판자와 구원자가 되려는 죄성을 없애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구약의 제사는 완전한 죄 사함 이전까지, 백성으로나마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하는 ‘완전한 제사의 모형’에 불과했다.



제사의 왜곡과 인간의 오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제사 역시 왜곡되었다.

예수님 시대의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재물을 사고팔며 제사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만들었고,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촘촘한 율법 조항을 만들어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들이 마음대로 해석해 낸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엄격하게 통제하시고, 상과 벌로 다스리는 심판의 하나님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에게 점점 두려운 존재로 오해되었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갈수록 불편해져 갔다.


완전한 제사, 십자가


이렇게 죄가 가득 찼을 때, 인간을 위해 하나님은 완전한 제사를 스스로 준비하셨다.

십자가의 제사는 완전한 제사였다.

양심이 굳어 버린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며 하나님조차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런 죄마저 용서하시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셨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사랑으로 인간의 마음을 회복시키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죄를 끌어안고 십자가를 지셨고, 죄를 이기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회복될 수 없던 관계를, 하나님은 지성소의 휘장을 스스로 찢고 나오심으로 회복하셨다.



히브리서의 선언과 권면


히브리서는 구약 제사의 역사와 왜곡, 그리고 그 한계를 정면으로 다루는 편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22] 우리가 이미 마음에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이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이제부터는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히브리서 10:22)

하나님은 '네가 깨끗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깨끗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안 지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자녀이기에 사랑한다'하시며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날마다 양심을 씻기시고, 두려움을 벗기신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외친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담대히 하나님과 교제하라고 권면한다.



죄책감에 대하여


십자가는 때로 인간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든 갚고 싶고, 미안함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으신다.

두려움과 미안함으로 맺어진 관계는 서로를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들어서 관계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사랑으로 유지되는 관계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십자가의 죽음을 미안해하기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라고 말한다.



관계의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뜻


히브리서 기자는 간곡히 권면한다.

과거의 종의 관계로 돌아가지 말라고.

옛 제사로 돌아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으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고.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거부하지 말고,

예수님의 완전한 제사를 믿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기라고 애타게 권면한다.


인간은 모두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이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열쇠는 예수님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바로 이 관계의 단절을 회복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내가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은 점점 자기다워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며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의 삶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려 하셨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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