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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모두가 주인공인 나라입니다

천국의 한 스푼 네 번째 이야기

by yukkomi


천국은 모두가 주인공인 나라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잃고 수동적으로 살아갈 때, 삶은 의욕을 잃고 지루해집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삶은 흥미로워지지만,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면 재미가 없습니다.


언젠가 "천국에서는 끝없는 예배와 찬양을 드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문득 '그렇다면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항상 하나님이시고, 나는 그저 백성 중 1/N의 가치로 여겨지는 삶은 기쁨이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왕자나 공주처럼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 된다고 해서 행복할까요? 나만 잘났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내 곁에 누가 남아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그런 사람 옆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자기만 주인공이 되려 하고 수평적인 관계를 거부하면 결국 외로움만 남을 게 뻔합니다.


영원히 행복하려면,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로 인해 깨어진 불편한 관계를 다시 편안하게 이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가장 먼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 아니라 다정하고 편안한 아빠로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우러러봐야 하는 분이 아니라 내 옆에 계셔서 마주 볼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또 나와 나 자신을 화해시키십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제일 미워했던 게 바로 나였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 스스로를 용서하고 안아주게 됩니다. 동시에, 이웃을 내 틀에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영접을 했다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받기 전의 시련이 ‘내가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생명을 받은 후에는 고난 속에서 죄에 물든 자아와 생명의 자아가 분리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 분리는 관계의 아픔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과정은 아프지만, 죄와 하나 되었던 자아가 죽을수록 더 자유롭고 평안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와의 분리의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아닌, 나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입니다.


모난 돌과 거친 돌이 부딪히며 다듬어지고, 고슴도치와 민달팽이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듯,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성장합니다. 때로는 참아왔던 상처가 폭발하는 순간도 찾아오고, 눌러놨던 이기심이 쏟아지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나 실수가 아니라,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아픔을 통해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다른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 이기심과 상처로 관계를 맺던 방식에서 벗어나, 믿음과 사랑으로 관계 맺는 법을 배웁니다. 내 안에 임하신 생명의 빛이 나를 비추고, 다른 사람을 비추며, 둘 사이를 비춥니다.


그 긴 과정 속에서 ‘인내’라는 열매가 자라나고, 그 인내 또한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천국은 너와 나,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 되는 곳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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