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한 바가지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려 애쓰며 눈을 부릅떴고, 그 뜻을 따르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듣고 알아도 결국 행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마주했을 때, 나에게 실망했고 아버지의 훈계에 지쳤고
답이 정해진 대화, 내가 잘해야만 유지되는 관계에 점점 지쳐갔습니다.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빠가 먼저 꼭꼭 닫힌 나의 방 문을 두드려 주셨고 아침 나눔 속에서 아빠에 대한 많은 오해가 풀렸습니다.
이제는 아빠 앞에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합니다. 아빠는 내 눈을 바라보고, 표정을 살피며,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십니다.
엉망진창으로 쓴 편지를 건네도 아빠는 글자 사이에 숨어 있는 내 마음을 읽어 주십니다.
나는 개떡같이 말해도 아빠는 찰떡처럼 알아듣습니다.
나도 미처 알지 못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그것을 나한테 주시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십니다.
그렇게 좋은 아빠를 만나니, 내 침묵은 끝났습니다.
알고 보니 나는 의심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엄청난 수다쟁이였습니다.
나 혼자만 떠든 것 같았는데, 신기한 건 끝도 없이 쏟아낸 이야기 끝에 어느새 아빠의 말이 내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조금씩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되어갑니다.
끝없는 대화 속에 우리는 결국 같은 마음이 되어 갑니다.
"사랑한다,
내 딸아.
널 깊이 믿는다,
내 딸아."
"나도 아빠를 믿어요.
그리고 아빠를
진짜로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