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자유의 날개 4

붉은강

by yukkomi

1. 고장난 저울

2. 나음 이야기

3. 담너머의 봄

4. 붉은 강

-묻어두었던 갈망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두려움을 안고서, 그들은 낯선 선택 앞에 멈춰 섰다.

지금, 삶의 방향이 조용히 바뀌려 하고 있다.

5. 생명마을

6. 자유의 날개




붉은 강


두려움과 비난의 시선을 뒤로한 채, 그들은 성문을 나섰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던 그들 앞에, 낯선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빛이 감도는 강물은 깊고도 출렁였고, 말 없는 물결은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순종이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어떻게… 건너야 하죠?”


성실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그네가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망설임 없이 한 발 내디디자, 붉은 물결이 흔들리며 길을 만들었다.


그들은 숨을 삼킨 채, 그 기적 같은 길 위에 발을 디뎠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들의 몸을 감싸던 검은 외투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낯선 옷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연한 하늘색 셔츠, 잔잔한 꽃무늬 원피스, 그리고 아이의 멜빵바지.

나그네 또한 긴 곱슬머리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따뜻한 눈빛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들은 말없이 강을 건넜다.

물결은 옷깃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

마지막 발걸음이 모래사장에 닿자,

갈라졌던 강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천히 합쳐졌다.



그리고 그 너머엔 담도, 울타리도 없는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꽃과 나무, 햇살과 바람이 어우러진 곳.

이름 모를 꽃들이 속삭이듯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어요.”


생명마을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다만, 종교성이 쌓아 올린 담이 너무 높아 그 너머를 볼 수 없었을 뿐이다.





나그네의 집


나음의 가족은 나그네의 집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잘난 나무 계단, 꽃무늬 커튼이 흔들리는 창,

따스한 햇살이 머무는 방.


모든 것이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처럼, 낯설지 않고 포근했다.


이웃들이 하나둘 나그네의 집을 찾았다.

빵이 담긴 바구니, 손누빔 이불, 조용한 인사와 함께 건네는 미소들.

아이들은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고 나음을 놀이터로 이끌었다.

그중 한 아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선 누구든 친구야.”

그 한마디에, 나음을 조여 오던 마음속 끈이 툭— 하고 풀렸다.


그날, 사이렌이 울리지 않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음은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나음은 어제 만난 ‘별이’의 손을 잡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예쁜 카페에선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와 고소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고,

산책길엔 토끼와 청설모가 오르내렸다.

줄무늬 고양이는 햇살을 안고 졸고 있었고,

공원에서는 아이들이 강아지들과 뛰놀았다.


시든 잎을 정리하고, 떨어진 꽃잎을 조심스레 쓸어 담으며

곧 맺힐 열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들의 손길은 부드러웠고 눈빛은 봄 햇살처럼 따스했다.


마을을 감싸듯 흐르는 강 앞에서, 별이는 걸음을 멈췄다.

“여긴 회복의 강이야. 힘들 땐, 다들 여기 와.

들어가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좀 나아져.”


말을 마치자마자, 별이가 나음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음은 옷도 벗지 못한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맑은 물살이 몸을 감싸 안았고, 아이들과 함께 한참을 뛰놀았다.


물이 흐르듯 마음도 조금씩 풀려갔다.

물 밖으로 나왔을 땐, 옷도 마음도 어느새 말끔히 씻겨 있었다.

나음의 눈길이 한동안 강물 위에 머물렀다.



하얀 집


마을 한가운데, 골목 사이로 아담한 동산이 솟아 있었다.

그 위엔 작고 하얀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흰 목재로 지어진 단층집.

담장은 없었고, 창가의 화분과 커튼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저기… 저 조그만 하얀 집은 뭐야?”


“응, 저긴 하얀 분이 사는 곳이야.”


‘하얀 분…!’


순간, 나음의 머릿속에 하얀 옷의 현자가 스쳐 지나갔다.

하얀 분도 혹시, 그런 사람일까?


나음의 마음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제발 아니길…”


나음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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