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자유의 날개 5

생명마을 이야기

by yukkomi


1.고장 난 저울

2. 나음 이야기

3.담너머의 봄

4. 붉은 강

5.생명마을

물음도 감정도 금지된 마을 ‘종교성’

그곳에서 태어난 ‘죄인 1’은 자신을 잃은 채 조용히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울타리 너머로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

나음은 처음으로 울고, 웃고, 실수하며 자신을 찾아간다.

이제 그는 ‘나음’을 넘어, 나다움으로 나아가려 한다.



친구


별이는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아이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어느 날, 나음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먼저 타고 싶어 달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별이도 함께 뛰었다. 그런데 그 순간, 별이의 발이 나음의 발에 걸렸고, 별이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넘어졌다.

나음은 짜증 섞인 얼굴로 별이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렇게 뛰면 어떡해!”


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음은 뒤돌아서 그대로 집으로 달려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벽에 기대앉았다.


‘미안해...’

눈물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날 밤, 나음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가슴 어딘가에 남은 불편한 감정이 자꾸만 몸을 뒤척이게 했다.

그러다 문득,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정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음과 어울린다는 이유만으로 ‘바보 1’이라 불리던 아이.

모두가 피하던 그때에도, 조용히 곁을 내주던 친구였다.


“정이야… 보고 싶다.”


다음 날 아침,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별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음아, 나랑 하얀 집에 가볼래?”



하얀집


문 앞에는 이미 하얀분이 마중 나와 있었다.


분명 첫 만남인데도, 어딘가 낯이 익었다.

또렷하진 않지만, 몇몇 장면들이 스치듯 마음속에 떠올랐다. 카페 창가에서 웃던 모습,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던 손끝,

비 오는 날 나그네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뒷모습.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그가 입을 여는 순간 하나로 맞춰졌다.

분명, 그분이었다.


그는 말없이 두 팔을 벌렸고, 별이는 조용히 그 품에 안겼다. 둘은 볼을 맞댄 채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잠시 후, 하얀분은 따뜻한 코코아와 컵케이크 한 접시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그건 나음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였다.


“많이 힘들지?”


그 한마디에, 눌러왔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나음은 흐느끼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의 품이 나음의 마음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네 탓이 아니야.”

그도 조용히, 함께 울고 있었다.

하얀 분의 품은 구름처럼 부드럽고, 숲처럼 고요했다.


“나음아, 이 마을엔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어. 과학성에서 온 이도 있고, 황금성에서 온 이도 있지. 너처럼 종교성을 떠나온 사람도 있고.”


그는 나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다들 전에 살던 곳과 너무 달라서 많이 힘들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나음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편안해질 거야. 내가 꼭 약속할게.”


그 말은 한 줄의 시처럼, 나음의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별이와 나음은 손을 꼭 잡고 동산을 내려왔다.



성장통


그 후로도 나음은 자주 넘어지고, 실수도 했다. 처음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래 울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눈물을 훔치고 곧장 하얀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나음의 마음은 햇살과 바람 속에서 천천히 자라났다.

몇 번의 계절을 지나며, 슬픔은 조금씩 스러지고 기쁨이 조용히 피어났다.

그 사이, 뿌리는 깊이 내려가 마음의 끝에서 다른 마음들과 조용히 맞닿기 시작했다.




무지개


생명마을에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저마다에게 꼭 맞는 옷을 입고 있었다.


햇빛 같은 옷을 입고 뛰노는 아이,

바람 같은 셔츠를 걸치고 노래하는 소녀,

붓자국 같은 베레모를 쓴 화가.


그들은 마치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빛깔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어쩜… 정말 나음이답다!”


“나음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옆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나음이 없는 생명마을은 상상도 못 하겠어.”


그들의 마음과 말은 하나가 되어, 따뜻한 진심을 전해주었다.



나다움


어느 날, 하얀 분이 부드럽게 말했다.

“나음아, 너를 ‘나다움’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친구들도 그를 ‘나다움’이라 불러 주었다.

그 이름은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것처럼, 나음의 마음을 간질였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나다움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름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입술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나왔고, 주춤거리던 발걸음도 어느새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온통 회색빛이던 나음의 세상이 서서히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시 쓰는 이야기


얽혀 있던 마음이 하나 둘 풀어지며 제자리를 찾아가던 어느 날,

묻어두었던 꿈 하나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다움은 본래 겁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아이였다.

자꾸 묻고, 계속 확인했다.

하지만 종교성에서는 그 모든 질문이 ‘의심’으로 여겨졌고,

의심은 곧 벌점이 되어 돌아왔다.


그즈음부터 나음은 마음을 일기에 눌러 담기 시작했다.

‘작가’라는 작은 꿈도 가슴 한켠에 품고 있었다.


솔직하게 쓴 일기 하나가 문제가 되었다.

나음은 소년 교화소로 보내졌고,

정해진 답이 나올 때까지 반성문을 수없이 고쳐 써야 했다.

그 기억은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생명마을의 시간은 그 상처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감싸주었다.


처음엔 글을 내보이는 일조차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꺼낸 글 앞에서 사람들이 말했다.


“읽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울컥하지?”

“이거, 너 혼자만 간직하긴 아깝다.”


그 말들이 조용히 마음에 가닿자,

나다움 안에 깊이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이

천천히,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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