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간: 새벽 4시 40분 출발, 오전 10시 26분 도착, 5시간 46분 산행(휴식 및 점식식사 시간 포함)
2004년 중단되었던 백두대간 산행을 이어간다는 선배들의 소식을 산악부 단톡방을 통해 접하였다. 20년 가까이 멈춰있던 걸음을 다시 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 선배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시절부터 몸 담고 있는 산악부의 역사를 이어가는 여정에 동참하고 싶었다. 7월 마지막 주 산행을 알리는 선배님의 카카오톡 메시지에 조심스럽게 참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2년 전부터 조금씩 등산을 이어가고 있었고 최근에는 나름 다이어트에도 성공했기에 잘 따라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산행 전날이 되었고 퇴근 후 아내와의 약속된 일정을 마친 후 짐을 싸서 집결장소로 출발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차는 막히지 않았고 금방 도착하였다. 멤버들이 하나 둘 모였고 짐을 옮겨 싣고 출발하였다.
7월 31일 0시가 조금 넘어 곧장 출발하였다. 그동안의 안부는 이동하며 나누었고 그렇게 모두가 잠든 시간 태백으로 향하였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태백시에 도착하였다. 산행을 위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문을 연 곳은 없었다. 새벽 3시 강원도 산골 도시인 태백에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내를 2바퀴나 도는 열정을 보였음에도 식당은 찾을 수 없었고 결국 테이블이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참깨라면을 먹어야 했다. 차에서 내렸고 서울의 후덥지근한 날씨와 달리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이번 산행의 코스는 화방재에서 시작하여 함백산, 두문동재, 금대봉을 거쳐 삼수령까지 이어져야 했으나 습한 여름의 날씨와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로 2개 조로 구간을 나누어 진행하였다. 나는 1조로 화방재에서 시작하여 두문동재까지 가는 코스였다. 어평재 휴게소에서 채비를 갖추고 2조와 떨어져 산행을 시작하였다. 시간은 4시 40분, 오래된 민가 옆으로 수풀이 우거진 곳에 안내표시가 있었다. 입구에는 오랫동안 누구도 들어서지 않은 듯 커다란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았다. 호기롭게 앞장서 시작하였으나 커다란 거미줄 앞에 선배뒤를 따라야 했다. 등산스틱의 용도를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스틱으로 거미줄을 제거하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준비해 간 렌턴을 켜고 걸어 나갔다. 공기가 찼지만 걷다 보니 금방 몸에 열이 올라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만항재까지 초반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어두웠고 특별히 쉴 곳도 없어 가뿐 숨을 내쉬며 쉼 없이 치고 올라갔다. 30분을 오르니 첫 번째 포인트인 수리봉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산행 시작 전 챙겨두었던 산악회등산리본을 나무에 걸었다. 해가 오르는 듯 미명이 밝아왔다. 랜턴을 껐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수리봉 도착- 05시 11분
수리봉을 찍으니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푹신한 흙바닥을 밟으며 걷는 길에는 원시림 같은 커다란 나무와 야생화가 가득했다. 저 멀리 해가 오르는 듯하였으나 나무를 휘감은 안개가 영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신비함을 느끼게 하였다. 붉은 해가 저 멀리서 떠오르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니 맑은 하늘 아래 풀숲이 나왔고 길게 자란 잔디와 낮은 나무에 맺힌 이슬에 신발과 바지는 젖어갔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과 맑은 하늘에 정신을 빼앗겨 신발이 젖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간중간 보이는 야생화는 싱그러움을 더했고 피곤함마저 잊게 했다. 언덕 위로 자리 잡은 군부대와 앞을 가로막은 철조망이 아쉬웠지만 맑은 하늘에(이땐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마지막인 줄 몰랐다)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 날개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얼마 걷지 않아 만항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고 도로를 건너 만항재 표지석을 만날 수 있었다.
만항재 도착- 06시 10분
함백산 코스가 시작되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지나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지만 함백산은 달랐다. 산 아래서 야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산에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곧 함백산 기원재에 도착하였다.
함백산 기원재 도착- 06시 53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뜨거운 햇살에 급하게 선크림을 꺼내 발랐다. 동행하는 선배는 젖은 양말을 갈아신으려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가방 안에는 새 양말이 한 짝뿐이었고 짝짝이 양말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해 간 토마토를 먹고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평상 옆으로 단이 쌓여있었고 함백산 기원단의 설명이 적혀있었다. 태백산은 왕이 천제를 지내던 곳인 반면 함백산 기원단은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곳이었다고 한다. 과거 함백산 일대 석탄이 많아 광부 가족들이 함백산 주변으로 이주하였고 광부들이 지하막장에서 석탄을 생산하던 중 잦은 지반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이 많아 가족들이 무사안전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백성들의 시민들의 간절함이 닿던 곳이라는 설명에 뭔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내려놓았던 가방을 짊어 메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둥근 봉우리의 함백산이 눈에 들어왔다.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돌계단 사이로 나무계단을 끼어놓아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쉼 없이 계속되었다. 한참을 오르니 평평한 데크길이 나왔고 저 위로 정상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돌아가고 있었다.
함백산은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80%의 오르막과 20%의 평평한 길로 구성된 코스가 숨은 길 없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 없이 곧장 만나게 되는 정상석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진을 찍으려 올라서니 바람이 불며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추위에 빠르게 사진을 찍고 올라온 길의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행을 마칠 때까지 구름 속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헬기장 옆 샛길로 들어서 숲 속에 들어섰다. 포근한 흙길이 계속되었다. 등산로 옆으로 더덕잎이 보였고 곳곳에 인위적으로 파여있는 흔적이 여럿 보였다. 선배는멧돼지가 더덕을 좋아한다며 멧돼지 흔적 같다고 하였다. 멧돼지 흔적이 맞다면 수 백 마리가 머물렀을 듯한 모습이었다. 스산한 기운이 흘렀고 무서움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배와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처법을 서로 이야기하며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한참을 걷다가 앉아 쉴 수 있는 데크가 나타났고 잠시 쉬어가며 밥을 먹기로 하였다. 메뉴는 참치김밥과 김치, 오이무침이다. 사실 먹기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한 조각 입에 들어가니 거짓말처럼 집어먹기 시작했다. 공기가 차 몸이 움츠려 들었는지 먹으니 몸이 펴지고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20분 넘게 앉아 있었더니 춥기 시작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걸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감이 없었다. 걷다 보니 표지판이 나왔고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리곤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은대봉에 도착했다.
은대봉 도착- 10시 02분
하산은 금방이었다. 걷다 보니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고 차 소리도 들리는 듯하였다. 멀리 도로가 보였고 산행의 도착지인 두문동재에도착했다.
찻길 옆으로 2조에서 주차해놓은 차를 타고2조의 도착지인 삼수령으로 이동하였다
선배들과 함께한 산행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인적 드문 지방 산행은 처음이었고 여러모로 새로운 산행이었다. 올해 다양한 산행을 했지만 신선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의 산행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에 계신 아내도 이해해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