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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반장 Mar 08. 2022

1월의 산_ 마니산

아내와의 산행 #1.

평소보다 일찍 아내를 깨웠다.
힘들게 뒤척이며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혼자 침실에서 나와 준비를 시작했다. 어차피 꼬질 해 질 것이기에 대충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정비를 하고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겨 가방을 쌌다. 미리 준비해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있으니 아내도 방에서 나와 준비를 시작했다.
오전 5시 20분 둘이 함께 이 시간에 어디로 향해본 적은 처음이다. 명절 탓인지 주차장에는 평소와 다르게 빈 공간이 많았고 집 앞 편의점은 불도 꺼져있었다. 고요한 시간, 다니는 차도 몇 없는 시간에 우리는 강화도로 향했다.

아내는 차만 타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유독 겁이 많아 엔진 rpm 올라가는 소리에도 한껏 민감해져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한다. 앞 차의 미세한 브레이크로 빨간불이 켜지기라도 하면 나에게 브레이크를 밟으라며 이런저런 훈수를 두다 곧 미안하다며 눈을 감아버린다. 나의 운전 습관에 대해 유일하게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이다. 고요한 아침에는 음악 소리 외에 어떠한 소리도 그리 반갑지 않다. 하물며 잔소리는 더욱 그러하다. 가만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미성숙한 존재는 작은 지적 하나에도 싫은 티를 내며 면박을 준다. 잠시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돌이켜보면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침묵이 지속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앞을 주시다가 작은 말거리라도 보이면 대화를 시작하고 의미 없었던 감정 소모의 앙금을 지운다.


도착한 때는 새벽을 지나 이른 아침 시간이다. 해가 떠오르지는 않은 미명의 시간, 가장 추운 시간이다. 공기는 찼고 옷매무새를 다시 챙겨 등산을 시작했다. 주말 아침이라 북적거릴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산행을 시작했다.  보통 등산로에서 입장권을 사는 경우는 사찰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니산은 산행에 대한 입장료가 있는 것이 특이했다.(참성단 때문인지 인천시 시설물 관리공단에서 입장권을 받고 있다.) 깜깜했던 공기는 점차 밝아져 불 없이 주변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고 준비해 간 랜턴을 사용하지 않고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단군 할아버지가 재를 올렸다던 고조선 참성단 조형물을 지나 아스팔트 길을 올랐다. 깜깜하진 않아도 밝은 낮과 같지는 않았고 집 앞을 벗어난 산행은 처음인 아내를 살피느라 등산로 입구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오르던 길 좌측으로 치유의 숲길, 계단길 등 안내가 보이긴 했지만 무시하고 앞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아스팔트 길이 길었고 교회를 확인하고서 다시 나타난 계단길 안내표지를 따라 등산로에 진입했다.


집에서 출발할 당시 내비게이션에 별생각 없이 마니산을 쳤고 마니산 주차장이 나와 목적지로 설정하여 찾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니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크게 4개가 있고 그중 2개는 우리가 시작한 지점에서 그리고 다른 2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길이든 힘들고 험하겠지만 우리가 택한 길의 이름이 계단길이니 등산을 막 시작한 아내는 기가 찼을 것이다. 물론 나의 세심하지 못함으로 우리가 계단을 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아내는 알지 못한다.


아내는 생각보다 잘 따라왔다. 이따금 조금씩 늦어지며 천천히 가자고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한발 한 발을 쉼 없이 내디뎠다. 날은 추웠다. 산행 시작 전에는 걷다 보면 몸에 열이 올라와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아내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다 보니 큰 효과는 없었다. 더군다나 아내가 춥다며 나의 방한장비를 하나씩 가져갔고 그 덕에 온몸으로 추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눈앞에는 끝없는 계단이 펼쳐져 있었다.

계단을 올랐다. 처음에는 그냥 계단이구나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한발 한발 오르며 보이는 끝 지점에 도달하면 새로운 길이 나타났고 그 길은 어김없이 계단이었다. 돌을 쌓아 만든 계단, 철제 구조물로 설치된 계단, 흙으로 단이 쌓인 계단 등 다양한 계단이 지형에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 계단의 높이도 높은 돌계단, 낮은 돌계단, 밋밋한 흙 계단으로 달랐고 혹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 앞꿈치가 계단에 부딪칠 수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길이름이 계단길일까. 한참을 오르니 표지판에 천사 계단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고 그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근래에 천 개의 계단을 오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천이라는 숫자를 세어보기라도 했던가. 계단의 개수에 놀랄 틈도 없이 스쳐간 생각은 아내가 이걸 보게 된다면? 앞으로 남은 계단을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릴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보지 못했고(앞만 보고 가기에 급급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난 그 계단을 모두 오른 후에 우리가 오른 계단의 이름이 천사 계단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계단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길이었다. 마니산은 겹겹이 들어선 산이 아니었기에 뒤를 돌아보니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며 선 위치가 높아져 갈수록 시야가 넓어졌다. 바닷가 마을의 빨갛고 파란 지붕의 모습과 길을 따라 달리는 작은 자동차 그리고 바다와 맞닿아 있는 갯벌 등이 눈에 들어왔다. 날이 맑아 멀리까지 시야가 뻗어졌고 식상한 표현이지만 가슴이 뻥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어서 다시 뒤를 돌아보면 조금 전 보았던 경치보다 조금 더 트인 그리고 다시 몇 걸음 더 오르면 그보다 더 트인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보며 찍어보아도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그림은 내 눈에 들어온 깊음을 담지 못했다. 그 파아란 하늘과 바다의 경계, 갯벌과 마을의 경계, 눈앞을 가린 나뭇가지와의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슴이 느낀 시원함. 사진으로 이 느낌을 전달할 수 없음은 나의 실력이 부족함일 수도 있겠고 그러한 생각 자체가 욕심일 수도 있겠다. 그나마 사진을 보며 당시의 기분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오르고 올라 계단을 모두 올랐고 눈앞에 고조선 시대에 단군 할아버지에게 제를 올렸다는 참성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지점에 도달한 순간 무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바람길의 반대편으로 올라왔던 것 같다. 능선 위는 올랐던 길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지난달 올랐던 지리산을 떠올리게 했다. 몸으로 느끼는 추위와 함께 소리로 들리는 청각의 감각은 공포를 불러왔다. 짧은 거리임에도 몸을 움츠리게 만들어 한걸음을 나아가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목표지점이 눈앞에 보였기에 한발 한 발을 내디뎌 정상에 도착했다.


올라선 바위는 꽤 널찍했다. 그리고 그곳은 바위가 아닌 헬기 포인트였다. 넓은 아스팔트 공간에서 사방을 훑으며 마니산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올라온 등선 반대편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었고 갯벌과 가지런한 논밭이 한 장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마침 바람도 불지 않아 풍경을 맘 편히 즐길 수 있었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힘들었지만 힘듦 없이 볼 수 없는 경치와 sns용 사진까지 꽤나 만족하는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조금은 길어도 완만한 길을 택했다. 올라온 계단은 자칫 잘못하면 구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금의 고민 없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내려가는 길은 바람과의 싸움이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매서웠고, 빨리 나무가 많은 숲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걸음은 빨라졌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앞서 걸어가는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처음 몇 번은 뒤를 돌아보며 나를 확인하다가도 앞을 향해 빠르게 걸어 나갔다. 어느덧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고 숲길로 들어서 여유로운 하산 길을 즐겼다. 하산 길에 마주치며 올라오는 사람들은 더위에 겉옷을 벗어 손에 쥐고 땀을 흘리고 있었고 우린 곧 마주하게 될 추위를 걱정하며 느긋한 하산 길을 즐겼다.


아내와의 첫 산행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하산 후 해물칼국수를 먹어야 한다며 열심히 맛있는 식당을 서치 하는 모습에 말은 안 했지만 다음 산은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곧 다음 산을 계획해야겠다. 바닷바람이 불지 않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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