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Nov 30. 2018

익숙함의 디자인

익숙함과 UI·UX 디자인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하다보면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이 세계의 온갖 스테레오타입에 밀어넣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예를들어, 신뢰감을 주는 디자인을 하려면 블루 컬러를 쓰며, 깔끔하며 정확한 선과 면으로 구성된 레이아웃을 구성하게 된다던지. 혹은 어떤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의 댓글을 작성한 사람에 대한 남·여 성비를 보여주도록 설계한다던지 말이다. 스테레오타입이라고도 이야기 했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일자화’는 필수불가결이다. 타인을 거울삼아 존재를 자각하고, 사회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개인들은 일련의 양식화 과정을 통해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댓글 작성자 통계를 보여주는 화면


  UI·UX 디자인을 함에 있어서 이러한 ‘타입’들의 존재는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좋은 UX라고 하면 쉬운 사용성은 절대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요소인 것이고, 쉬운 사용성은 사용자에게 익숙함 혹은 단기간의 학습으로 익숙해질 수 있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익숙함이란 무엇일까. 사용성의 면에서 다르게 표현하면 ‘직관적이다’ 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제각각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동일한 방식으로 그 의미를 인식하고 향유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이라고 칭하고 대부분의 익숙함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예를들어 기호 ‘<-‘를 인터페이스에서 접했을 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이것이 뒤로가기 임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익숙함이라는 것을 시각양식이나 미디어로서 이야기한다면 재매개라는 개념을 들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싶은 익숙함이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고 그러한 재료를 가지고 세상의 입맛들을 위해 요리하는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의 디자인, 그 시작은 거버넌스와 뗼 수 없는 관계인 듯 하다. 시민의 계몽, 전쟁의 정당화 같은, 지배권력이 대중에게 무언가를 설파·설득하는 도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특히 대중을 설득하는 작동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휴리스틱’의 개념일 듯 하다. 사람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전달 과정에서 첫인상에서 받은 느낌 같이 시각적 혹은 호감의 문제가 설득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라는 개념이다. 시각적인 임팩트 뿐만 아니라 정보 전달. 사용자 경험을 디자이너가 의도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최대로 활용해야 그 커뮤니케이션에 잡음이 없을 것이다. 설득의 힘이 디자인에서 가능한 이유는 바로 그 익숙함을 디자인은 최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활용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기호인 심볼, 텍스트, 컬러, 사진, 정보의 구성, 브랜딩, 사용성 등의 요소들이 작용할 수 있다. 나는 브랜드팀에 있을 때 이것을 직접적으로 느꼈는데, 우리 회사의 이미지를 사진에 담으려면 사진이 어떠한 방식으로 촬영되고 구성된 상태에서 어떤 톤을 가지고 무엇을 이야기해야하는가ㅡ이를테면 자연스러움ㅡ가 사진 한장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또 이렇게 제작된 사진은 그럭저럭 사람들에게 의도한대로 와 닿는다. 예를들어 자연스러움을 어필하려면 어떤 양식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며 설득력이 있을지 숙련된 디자이너들은 직감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가 그 누구보다 더 현실세계와 인간의 존재 방식에 귀를 기울이며 아주 미묘한 변화라도 알아채고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경험을 전달할지, 이는 기술적 제약이나 기술적 뒷받침이 맞물려있다. 바우하우스의 배경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조악한 대량생산물을 대체하기 위해 대량생산공정에 적합한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쓰기좋은 디자인의 필요성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기술 뿐 아니라 자본, 인력, IR 등 여러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소한, 디자이너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익숙함을 당연스럽게 휘두르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익숙함은 편리함과 쉬운 길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다수에게 선사되는 권력과 다를 바 없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모바일을 소지하며, 수많은 서비스와 제품들을 디자인을, UI·UX를 거쳐 접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펼쳐진 인식의 지평에서 익숙함을 어떻게 요리할지 뿐만 아니라 익숙함의 너머에 있는 주변적인 것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익숙함의 뒷면에는 폭력과 억압이 늘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양가적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세상이 주변적인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줄수록 세상은 살만해진다. 우리 디자이너들이 익숙함의 권력에 도취되어 주변부를 잊지 읺았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