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공간들
해외에 오래 머물다 보면 유독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계절의 리듬이 녹아있는 나의 장소를 거니는 일이다. 낯선 타지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지만, 오래 집 떠나 있다 보면... 계절의 빛과 온도에 따라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는 익숙한 풍경이 서 있는 자리가 눈앞에 아른거리곤 한다.
그래서 이번엔 도착하자마자 길을 나섰다. 짧은 휴가가 아닌 긴 호흡의 방학으로. 조금은 더웠던 초가을에서 이제 막 접어든 겨울 사이를 그렇게 지나왔다. 마치 어제 꿈속에서 스친 듯 반갑지만, 기억이 시간을 건너온 만큼 작은 낯섬도 공존하는 물리적 지점들이 나를 멈춰 세웠다.
어떤 곳엔 공간을 지은 사람에게 건네는 질문들이 남았고, 또 어떤 자리엔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큼 나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곳에서는 근원적 존재적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이 출렁였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움 그리고 마치 나를 오래 기다려 준 것만 같은 공간 속에 휴식 같은 안온함이 숨 쉰다.
또 어느 날은 커다란 창가에 앉아 시시각각 깊어져 가는 하늘만 가만히 바라보는 날들도 있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내 안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 곰곰한 시간 속에, 작은 이야기들은 낙엽처럼 내 안에 쌓여만가고, 그렇게 또 이 아쉬운 계절이 지나가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처럼 내려앉은 가을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니, 새하얀 겨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 안에 담긴 이야기를 빛나는 장식처럼 하나 둘 엮어볼 용기가 생겨난다. 그동안 아껴 두었던 겨울 공간까지 발걸음 하고 나면... 가깝고도 먼 그리고 언젠가는 같은 거리에 있을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