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지 않은 푸름 속에서

환기미술관

by Yule

왜 부암동에 오면 이토록 마음이 고요해지는지 모르겠다. 북악산과 인왕산 폭에 겹겹이 둘러 쌓여 마치 누군가의 품 속 같기도, 발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반짝임이 마치 다른 차원처럼 보여서일까. 조금 가파른 길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산자락의 고즈넉함이 묻어있는 산책길을 걷는 일은, 일상의 쉼을 선사한다.


가는 골목마다 발걸음을 멈추는 공간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사계절 내내 한 작가의 숨결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 추상적 조형언어로 동양의 감수성을 양식화한 대표 모더니즘 화가 김환기의 작품이 살아 있는 곳이다. 부암동 산자락에 백색의 자태로 학처럼 고고하게 서있는 환기미술관은 어쩐지 화백을 많이 닮아있다.

그림을 볼 때 밑도 끝도 없는 상상에 빠지는 나는 유난히 추상화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긴 편이다. 정형을 깨고, 개성적인 방식으로 조형공간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달까. 특히 점·선·면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요소로 이루어진 그의 후기 작품 앞에 서면, 거대한 질서에 압도되고 어떤 문을 열고 초월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만 같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환기미술관에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문장 때문이다. 현대적인 조형어법을 탐구하는 화가이었던 그는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작품일지기도 했던 그의 일기 속에 남아있던 문장들을 따라 읽으며 이동하다 보면 마치 작가의 도슨트를 직접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만큼 수첩을 꺼내 그의 언어들과 적어 내려갈 수밖에 없다.


또 그의 작품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드로잉을 보는 일도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스케치북에 마치 손장난을 한 것 같은 작은 채색 드로잉은 "이 엄청난 대작들도 마치 아이가 그린 듯한 천진한 시작이 있었구나"라는 용기를 선물 받는다. 특히 엷고 투명한 안료로 은은한 여운이 남아있는 그의 오묘한 색채가 드로잉에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나무와 달, 1948
산월, 1959
새벽 #3, 1964-65
20-IIII-70 #167, 1970
19--71#206, 1971

그는 그림 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평생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가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기존의 추상에 달, 산, 항아리 같은 구체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가미했던 파리시절부터, 전면점화로 순수추상의 극점에 도달한 뉴욕시절까지, 구상에서 추상으로, 객관에서 주관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해석에서 관조로 자신의 작품을 무한 변주 했다.


어제는 어쩐지 뒤숭숭해서 거리에 나갔지.
우연히 레이먼드라는 화가를 만났어.
내 스케치북을 보였더니 경이적인 태도였어. 너무 동양적인가? 물었더니 그렇지 않대. 대단히 오리저널하대. 쬐끄만 작품이 우주감을 준대. 묘한 색깔이래.
가다가 진지하게 내 그림을 보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기쁘고 용기가 나요.
나 우선은 다작보다도 알뜰한 그림을 만들래. 금년은 4,5 폭에다 정열을 쏟을래.


이렇게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던 김향안 여사는 이후 환기재단을 만들고 이곳 부암동 산자락에 최초의 사설 미술관을 지었다. 김환기의 그림언어인 산, 구름, 달, 나무, 바위의 정취를 살려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김환기의 달을 연상시키는 둥근 지붕의 전시동, 대지의 기울기에 순응하는 이 자연스러운 건축 양식이 조화롭다. 3층이 트여 자연광이 쏟아지는 전시장 중정 그 주변을 뱅글뱅글 계단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 평일 이른 시간에 운이 좋으면 다른 관람객 없이 홀로 이 공간 전체를 누릴 수 있을 때가 있는데, 정말 온 우주를 가진 듯한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심상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발걸음을 옮기고 싶은 곳. 소복이 눈이 내리는 겨울 또 한 번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