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부암동에서 삼청동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복잡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의 끝자락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마주한다. 왠지 이 여유로움을 내려놓고 싶지 않을 땐, 무료 아트 셔틀버스를 타고 과천관까지 훌쩍 떠날 수 있다. 산을 떠나 다시 산으로 가는 길. 굽이굽이 펼쳐진 청계산 능선에 걸린 과천관으로 향하는 직통열차랄까. 가방에 좋아하는 간식 잔뜩 싸들고 오르는 이 길은 언제나 설레는 소풍이 아닐 수 없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커다란 버스를 타고 달린다. 동굴 같은 터널을 지나 산 넘어 강을 건너다보면 어느덧 산 초입에 들어선다.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들과 코끼리 열차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느리게 흘러가는 대공원 리프트가 구름처럼 떠있다. 이곳은 들어서자마자 미술관 입구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고 방향을 찾으며 지금 순간에 머무는 시간부터 관람이 시작된다.
1만 평이 넘는 널따란 조각 정원을 보물찾기 하듯 거닐며 초겨울 바람을 깊게 들이킨다. 보고 싶은 전시가 항상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여긴 그냥 언제 와도 좋다.
산과 강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호기심의 방이니까.
산중턱 능선을 따라 세 개의 건물이 나란히 놓여있다. 건물은 강당, 도서관, 연구기관이 어우러진 복합건축물이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하늘에 닿을 듯 공간 전체를 관통하는 다다익선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인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제작된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은 7단의 철골 구조에 1,003개의 모니터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나선 계단을 따라 나무 그늘을 오르면 3층 옥상정원 <시간의 정원>에 다다른다.
과천관의 최고층인 옥상정원은 보통 미술관 전시를 관람한 후 오는 종착지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이곳에 제일 먼저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원형 정원, 멀리 원경으로 펼쳐진 자연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과 예술이 서로 공명하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계단으로 내려와 미술관 속 작은 생태정원인 원형정원을 잠시 산책해도 좋다.
이번엔 특별전과 상설전시까지 다다익선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아우른 상설전 <한국 근현대미술>의 포용적이고 다양성의 시선 (김환기 작가의 특별세션! 도 마련되어 있다) , 여기에 더해 특별전 <해외명작: 수련과 샹들리에>는 전혀 다른 화풍의 예술가들이 연결되어 만들어낸 공간의 흐름이, 또 다른 결의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마치 천천히 움직이는 동물원과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놀이공원에 온 느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국 미술사를 연구하며 현대미술 작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보존해 왔다. 여기에 2021년 이건희 컬렉션 수증을 통해 해외 미술 작품들까지 더해지며, 전시의 스펙트럼은 한층 넓일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어린이 미술관을 통해 별도의 전시가 운영되고 있는데, 언제나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넓은 시야와 창의성을 키워갈 수 있도록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미술관을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그려보는 사생대회는 어른들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참여한 모든 이의 작품이 반짝일 수 있도록 별처럼 공간을 수놓고 있다. 공공성이 확대되며 개인의 소유품이었던 작품들이 대중의 품으로 들어온 것처럼 이곳은 언제라도 발걸음을 옮기면 일상의 경험을 예술로 이해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다.
시간의 빛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내려앉는 자리에 앉아 광합성을 하고 나니 어쩐지 한 뼘 더 자라난 기분이다. 호기심의 방은 언제나 나를 성장하게 한다. 존재 속에 있는 새가 다른 존재 속 새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내면의 정원을 더 포근하게 가꿀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