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미술관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일인 것 같다. 신기하게도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엔 항상 산이 가깝게 자리한다. (등산은 아닐 수 있습니다만)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좋아하는 공간을 따라 걷다 보니 벌써 차례로 인왕산과 청계산 그리고 관악산을 만난다. 청계산 깊숙한 비밀의 정원을 지나 다시 한번 험준한 관악산을 넘으면 나의 오래된 장소이자 언제 와도 마음이 편안한 캠퍼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 오면 자연스레 걷게 된다. 걷고 싶은 만큼 마음껏 걸을 수 있다. 요즘은 라떼는 없었던 SNU-Walk도 생긴 모양이다. 날씨와 공강에 따라 걷는 코스는 매번 달랐지만, 그중 항상 빠지지 않고 함께하던 단짝 같은 장소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찻집 '다향만당' 그리고 서울대학교 미술관. 때론 산 허리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마음을 스치는 산들바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충분했던 시간들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사계절 언제라도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것 같은 정육면체 상자, 미술관은 언제나 놀이터같은 곳이었다. 정면에서 보면 마치 반투명 유리벽이 허공에 떠있는 듯한 착시를 준다. 산의 경사지에 자리한 탓에, 재미난 구조감이 살아있다. 건물 전체가 투명한 통유리와 U 글라스, 노출된 철골로 이루어져 있어 들어서자마자 세 개의 층이 층을 한눈에 들어온다. 넓게 열린 공간감, 반투명한 유리 속에 스며든 빛, 비정형화된 창문까지.. 전체적으로 보면 차가울 만도 한데 이곳에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주로 전시기회를 제공하는데, 전공의 경계를 너머 한 가지 주제를 표현해 내는 폭넓은 시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작가분에게 직접 큐레이팅을 들을 수도 있다. 분명 단체전이지만 층마다 켜켜이 쌓여있는 작가들의 반짝거림이 눈에 보이는 선물상자가 아닐 수 없다.
전시연계 워크숍이나 눈이 번쩍이는 문화강좌도 마련되어 있어 언제든 학교에 발걸음 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는 곳. 날이 추워 산 위 공대까진 올라가진 못했지만 커피 한잔 들고 2시간 남짓 걷고 나니 볼이 얼얼해진다. 어느 길을 걸어도 정겨운 이야기가 녹아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이제 산의 숨결을 뒤로하고, 천천히 도심으로 걸어볼까? 그곳에 닿을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