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걷다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_폴로나루와

Ancient City of Polonnaruwa

by Yule

스리랑카 문화 삼각지대 두 번째 행선지는 이름도 낯선 폴로나루아. 1,000년 넘게 수도 아누다라푸라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싱할라 왕국의 영광은 남인도 힌두 왕국의 침략으로 잠시 가리어졌지만, 뿌리 깊은 믿음과 정신적 유산은 다시 한번 폴로나루와에서 빛을 발한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스리랑카의 두 번째 수도가 되는 이곳은 3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이자 계획도시로 왕국의 수많은 보물과 유적을 도시의 심장에 간직하고 있다. 아누라다푸라와 마찬가지로 구 왕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국의 경주처럼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살아있는 역사책 속을 걸어 다니는 것만 같다.


도시 가운데에는 바다같이 넓은 인공호수가 펼쳐져 있어 아늑하고도 포근하다. 당시 왕국의 최대 프로젝트는 도시의 농사 용수, 전시 방어용 댐, 관개시설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 만들어진 인공호수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호수와 바로 인접한 이번 숙소. 정글에서 야외취침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귓가를 때리는 야생동물들의 합창에 강제 새벽 기상. 덕분에 물 위에 걸린 일몰을 바라보며 물멍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자연이 쉼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시시각각 다른 빛깔로 녹아드는 호수를 바라보며 이른 아침산책의 여유도 가져본다. 가장 높이 창공을 가르는 독수리 그리고 이름 모를 물새들의 모닝 루틴을 관찰하며 조금은 부지런히 하루의 시작을 깨웠다.


다시 피어난 싱할라 제국


폴로나루와 왕국 시대 가장 핵심적인 인물을 꼽으라 하면 파라크라마 바후 1세 (Parakrama Bahu I)를 꼽을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 유일하게 ‘대왕’이라고 불리는 군주인데 남인도를 물리치고 폴로나루와를 되찾아 싱할라 왕국을 세웠으며 약소국으로 분열된 국가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곳엔 파라크라마 대왕이 이룩한 왕궁터와 영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가 처음 마주한 유적이 바로 이 왕궁 (Royal Palace)였는데 두께 1미터가 넘는 3중 벽으로 지어진 벽돌 건물로 과거 7층 30미터의 높이였지만 지금은 벽돌로 지은 3층 높이의 건물벽과 터만 남아 있었다. 기둥마다 각 각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왕의 접견실 (Council Chamber), 왕실이 쓰던 거대한 목욕탕(Kumara Pokuna)까지 얼마나 강력한 왕권을 갖추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역사와 문화 유적 탐방을 참 좋아하는데 특히 이렇게 터가 남아있는 곳에 가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에게 하나하나 정보를 들으면서 순서에 맞춰 학습하는 것보다 사전에 기본정보만 습득하고 주도적인 관찰을 통한 추측 그리고 추론을 통해 나만의 해석을 곁들이다 보면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역사는 사실을 기본으로 하니 나중에 팩트체크는 필요하기도 때론 이야기가 산으로 갈 때도 있지만 이런 얼렁뚱땅하는 기행도 참 재미나다. 물론 이런 여정이 이상해 보이셨는지 기사님은 다른 가이드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기울여 내용을 들은 다음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느라 많이 바쁘셨다. 아마 우리가 랑카의 역사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공부하길 바라셨나 보다.


파라크라마 대왕은 물론 거대한 댐과 운하 건설, 코끼리 기병을 포함한 군대 재조직, 불교 관습 개혁 및 예술 장려, 농업 및 무역을 활성화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중 가장 영롱한 빛을 한 개만 꼽자면 불교문화가 만개한 바위 사원, 갈 비 하라 일 것이다. 무려 화강함 통바위 언덕 한 면에 부처를 다각도에서 조각한 불상인데 좌불상, 열반상이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전체 바위에 각 기 다른 불상을 조각하는지라 혹여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기존 바위를 치우고 새롭게 조각을 시작했다고 하니... 부처님의 열반상은 특히 길이 14미터, 높이 5미터에 달하며 그 옆에 부처님의 제자 아난존자상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어찌 사람의 손으로 유려한 곡선과 미묘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장인 정신을 넘어선 예술의 경지이지 않을까?


그 조각의 과정이 수행이요 고행인 것을..


문화를 꽃피우다


파라크라마 대왕에 이어 그의 조카인 니상카말라가 후대 왕이 되었는데 그는 폴로나루와에서 가장 큰 벽돌 사리탑을 건축한다. 상부 첨탑 부분이 금으로 덮여있어 란콧 비하라 (Rankoth Vehara: Golden Stupa)라고 불리며 규모는 지름 170m, 높이가 33m에 이른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는 다소 낭만적인데 아누라다푸라까지 기도하러 가는 왕비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축조했다고 한다. 왕궁을 너무 꼼꼼하게 보느라 많이 지쳐있었는데 멀리서도 그 규모를 짐작케 하는 스투파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 낮의 태양을 한껏 머금은 모래를 맨발로 들어서자 발바닥이 찌릿한다. 탑 아래엔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스투파 주변을 돌며 의식을 치르고 사람들은 그 행렬을 뒤따른다. 너무 더워서 당장이라도 녹아버릴 것 같은데 저 의상을 입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이 큰 탑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돌고 도는 사람들. 잠시 보리수나무 그늘 밑으로 피해 몸을 피해 본다.


자세히 보니 탑에는 그동안 걸어온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훼손된 부처님상 그리고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유적이 결코 황량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사람들의 손길과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당에는 정성스럽게 바쳐진 꽃이 가득하고 각자의 소망을 핀 초들 이 지나간 자리가 아직 따뜻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투파 사이로 자라난 잡초들을 한참이나 제거하고 깨끗이 정돈하는 사람들. 이곳 사람들에게 란콧 바하라는 결코 역사 속에 뒤안길로 사라진 유물이 아닌 나의 소중한 본당이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복원작업이 완벽하게 끝난 순백의 아누라다푸라 루완웰리세야 대탑보다도 더 이곳에서 큰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11세기 축조한 훌륭한 관개시설과 운하를 아직도 이곳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다. '단 한 방울의 빗물이라도 나의 백성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 채 바다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라는 파라크라마 대왕의 애민정신은 이곳을 호반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우연히 담장 너머 이곳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마주한다. 운하를 통해 흘러나가는 작은 물줄기는 누군가에겐 빨래터이자 아이들에겐 신나는 물놀이 공간이 된다.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장구 소리와 마침 과거 영광을 누리던 왕족들의 이끼 낀 목욕탕이 한눈에 대비된다. 찬란한 이 왕조의 시간여행 속에 결국 마음에 남는 건 과거 영광이 아닌 이를 일궈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을 수많은 백성들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불상과 건축을 완성했을 장인들의 숨결이었다. 위대한 왕이 있었기에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결국 되찾은 이 나라를 지키고 만들어 온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오늘의 랑카가 중세의 역사 속에서 꼭 보았으면 하는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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