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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Oct 07. 2021

일광유년 (日光流年)


"나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니야." 



소설을 이토록 오랫동안 붙잡고 있기는 무척 오랜만이다. 1000여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김숨 작가의 <한 명>을 읽을 때 도중에 책을 몇 번이나 덮었는지 모른다. <일광유년>을 읽으면서 그 무참함을 다시 한 번 느꼈더랬다.







란 씨, 두 씨, 쓰마 씨의 세 성을 가진 주민들로만 구성된 마을 산싱촌은 바러우산맥의 깊은 주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언제인지 짐작할 수 없는 오래 전부터 산싱촌 사람들 대부분이 목구멍이 막히는 증상으로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삶보다는 죽음이 가까운 산싱촌 사람들에게 희망은 촌장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마흔 살이 된 촌장 쓰마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쓰마란이 태어나는 시점까지 3대에 걸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진행된다.산싱촌 사람들은 바깥세상과는 단절되다시피 자신들만의 시간에서, 그들의 땅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먹고 살며 목돈이 필요할 때면 교화원을 찾아가 피부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 작은 마을에서도 권력과 성애에 대한 욕망은 존재하며 연민과 질투에 의해 인생의 행로가 달라지기도 한다.






산싱촌의 촌장들은 모두 주민들의 평균 수명 연장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쓰마샤오샤오는 유채밭에, 란바이수이는 흙에, 쓰마란은 링거수에 집착한다. 그들이 이것들에 집착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일까? 여든 살 된 노인이 일평생 유채를 재료로 한 음식을 먹었다는 경험, 유채가 효과가 없자 유채를 심은 흙이 바뀌어야한다는 판단, 땅을 아무리 갈아 엎어도 소용이 없고 링거수 상류의 사람들이 장수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실 등이 그들을 생명 연장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란바이수이와 쓰마란은 마을과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피부 매매, 매춘, 성상납 등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할 뿐만 아니라 공사 도중 일어나는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희생이 과연 공공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제된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희생과 불행을 제물삼아 키워진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이 세 사람ㅡ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 쓰마란ㅡ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권력욕이다. 바깥세상에서 보자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촌장이라는 지위를 탐하는데 거침이 없다. 결혼을 담보로 연인에게 거짓말을 시키며 매춘을 부탁하고, 동생에게 매춘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촌장의 자리를 앉은 즉시 독재적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는 이 모든 행위가 마을을 우선한 대의이며, 전체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해야함을 강제한다. 이들의 주장에 진심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권력의 희열에 스스로 도취되었다고 보여지는 부분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링인거 수로 공사 완공을 기념해 두바이가 쓴 '링인수가 생명을 더해주니, 쓰마란의 공덕이 끝이 없네'라는 문구가 말해준다. 어째서 란쓰스의 인육 장사로 수술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고 공사장에서 사지 멀쩡하게 살아돌아온 쓰마란의 공덕이란 말인가. 사망자, 부상자, 피부를 판 남자, 인육 장사를 한 여자들의 공덕은 다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에서 애증이 얽혀있는 세 사람ㅡ란쓰스, 두주추이, 쓰마란ㅡ의 운명은 란쓰스가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란쓰스가 쓰마란을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면 두주추이는 비록 늦게나마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쓰마란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두 여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매독으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란쓰스의 시신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나마 마지막 양심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나는 이걸 도저히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소설은 거의 모든 내용이 참담하다. 기근이 계속되자 장애가 있는 자식을 고려장하듯 내다 버리고, 죽은 자식의 인육을 먹는다. 자식을 버리고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어미들은 정신줄을 놓고,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살아남은 어린 자식들은 누구에게 향해야할지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에 의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이미 인생의 절반을 산 그들을 기다리는 건 여지없는 가난의 대물림과 무지, 그리고 남자 아이들은 성년식을 치르듯 거쳐야 하는 피부 매매, 여자아이들은 마을에 급전이 필요할 때 강요당하는 인육 장사다.


산싱촌 사람들의 목구멍 병에 대한 원인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유전적 요인인지 아니면 친족 결혼에 의한 돌연변이인지 알 수 없고, 원인을 모르니 당연히 치료법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외과적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에 대한 혜안은 소설의 종반부에 등장하는 촌장 두과이즈의 유언에 있다.



881.

어려서부터 죽음을 알게 할 필요가 있어요. 죽으면 죽는 것이라는 걸, 볼이 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해야 해요. 평생 이 세상에 살면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마음 졸이는 일이 없게 해야 해요.





그들이 무게를 두어야했던 것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살아있는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에서는 적어도 피부를 팔지 않고 인육 장사를 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10년같이 보내야하는 삶의 충만함이어야했다. 두과이즈를 이은 다음 세대들의 촌장이 집착한 것은 삶이 아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목숨을 담보로 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 벽지의 산촌 마을을 통해 우리는 인간 세상을 볼 수 있다. 산싱촌의 무참함이 형태를 달리할 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먹먹함을 더한다. 링인거 수로의 실패로 죽음을 택한 자들과 절망적인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이룬 과업에 만족하며 죽음을 맞이한 쓰마란과의 괴리, 그리고 대부분 가정에서 가장을 잃은 산싱촌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일광유년 #중국소설 #옌롄커 #자음과모음 #출판시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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