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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Nov 03. 2021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구를 떠나 힘겹게 터를 닦아 40년째 살아온 콜로니 3245.12를 떠나 이주하라고 통보를 받은 개척민들. 그들은 심스 컴퍼니의 피고용인으로서 사업권을 잃은 컴퍼니가 정착민들에게 떠나라고 하면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임금도, 은퇴도, 의료혜택도 없는, 자력으로 먹고 살며 잉여생산물까지 내며 겨우 살만하게 만들어놨건만 또다른 개척지로 떠나야 한다. 이주선택권은 없고, 1인당 가져갈 수 있는 짐은 고작 29kg, 심지어 30일 뒤에 떠나야한다.   



칠순의 오필리아가 늙어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이주비용을 대지 않겠다는 컴퍼니. 노령으로 공식적인 직업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살림 정도, 더이상 출산을 할 수 었으니 노동력을 생산해 내지도 못하는 오필리아가 컴퍼니 입장에서는 무쓸모 존재다. 오필리아는 몰래 콜로니에 남기로 결심한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시대가 요구하는 젊음, 생산성, 효율성, 남성성이 강조된 강한 힘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인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늙은 여성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인물이 자유와 고독을 향해 과감한 모험을 단행한다. 컴퍼니에 의해 콜로니 생존인력을 전부 소개疏開시킨 행성에 홀로 남은 오필리아. 일생을 통틀어 처음 혼자가 된 그녀는 자신이 만든 비즈와 망토만을 두른 채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비어 있는 집들과 센터, 창고 등을 탐색하며 혼자만의 즐거움을 느낀다. 일흔의 나이에 처음 가져 본 자유. 오필리아의 일탈이 없었다면 평생동안 알지 못했을 그 자유를, 또다른 행성으로 강제 이주당한 이주민들은 죽을 때까지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어쩌면 '자유'라는 단어조차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오필리아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성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해왔다. 개척민 1세대로서 경험을 나누고, 갈등을 중재하며, 교육과 돌봄의 역량을 발휘하지만 이를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러한 오필리아의 능력은 괴동물이라 불리는 외계생명체의 등장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또다른 이주민의 셔틀을 파괴하고 외모가 다른 괴동물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오필리아는 그들을 적敵의 위치에 놓지 않고 일단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소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조사단(학자)들이 외계생명체를 연구 대상으로만 지정하는 것과도 다르다. 오필리아는 이후 괴동물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기술을 나누며, 출산과 갓 태어난 괴동물을 돌본다. 이러한 능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지지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외계생명체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괴동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는 것처럼 괴동물 역시 오필리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감을 통해 알아챈다. 이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조사단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 인간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괴동물보다도 하지 않는다고 씁쓸해 하는 오필리아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인간과 괴동물들 간에 발생한 갈등의 원인을 찾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를 중재하는 역할은 깊은 혜안과 연륜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노령의 오필리아다. 현재에도 고령화 시대를 걱정하며 노인들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노령 세대의 역할에 관심을 두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우주선도 만들 수 있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무한 경쟁, 연애와 위로도 SNS로 가능한 세상에서 정서적 돌봄이나 연륜에 의지한 혜안이 폄하된지는 이미 오래다. 






 



자연의 순리대로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며 살생을 하는 괴동물과 금전적 손익을 따지며 개척민의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 일차원적인 비교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돌이켜보면 경제적 식민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세계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조사단 사람들이 괴동물의 사회 조직에서의 연대나 관계보다는 어떤 계급 구조를 가졌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적 수준이 낮은 자생종의 둥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기며,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술을 괴동물과 나누지 않겠다는 지구인, 그리고 오필리아가 어린시절 자신의 배움의 열의와 배우는 속도가 빠르자 화를 냈던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괴동물에게 어린 자신을, 지금의 자신에게 괴동물을 대입시키는 모습은, 같은 선상에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괴동물들 사회에서 둥지수호자는 새끼들이 모든 것에 관해 최대한 많이 배우기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기를 바란다. 나쁜 둥지수호자는 새끼들이 계속 같은 것에 만족하게 만들어 그들이 안온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필리아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부모들이 나쁜 둥지수호자였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열의를 복종이라는 틀에 가둬놓고 관습에 맞춰진 삶을 살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다. 대다수의 인간은 나쁜 둥지수호자인 셈이다.  



필요와 불필요, 쓸모와 무쓸모, 자격과 무자격,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무능과 유능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각종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말 괜찮은 것인가? 이해와 존중이 결핍된 사회에서 우리가 이루려는 것, 그리고 가야할 방향을 '늙은 여자' 오필리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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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동물의 사회구조는 대다수 성체가 속한,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무리와 육아를 위한 안전한 정착지의 조합. 정착지에서 머물며 포식자와 고된 이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어린 것들은 가정 현명한 어른들에게 보호는 물론 교육까지 받는다. 무리에서 특별한 지위는 낯선 자들과 소통하는 자, 전쟁 지휘자, 여론 확인자, 딱-카우-키이어다. 이중 딱-카우-카이어는 둥지수호자로서 유모 이상의 존재로서 산파이자 간호사이며 교사의 역할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에게 불복종이란 없으며 대신 반대자는 같은 의견을 가진자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사족.

온라인 서점의 작가 소개를 통해 저자의 사진을 봤는데, 딱 오필리아를 보는 느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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