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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Apr 16. 2022

밀레니엄 피플

J. G. 밸러드




396.

"데이비드, 문 열어 봐요. 이 사람 정말, 또 그 안에 스스로 들어가 갇힌 겁니까......" 



히스로 공항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전처 로라가 직접적인 피해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컴은 테러범을 잡기 위해 시위 현장마다 쫓아다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산층 혁명으로 들끓고 있는 첼시마리나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혁명의 중심에 있는 리처드 굴드와 우정에 빠지고, 히스로 공항 폭탄 테러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진다.  









이 소설의 줄기가 되는 주제처럼 우리는 중산층의 꿈이라는 강렬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삶의 목적이 중산층 진입인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중산층 환상에 사로잡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하우스 푸어, 카 푸어 등 계급 구조가 정치적인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어 중산층을 억제해서 굴종하게 만든다.  


관리는 안 되는데 관리비는 오르고, 관리 회사 직원과 부동산 업자가 공모해 퇴락한 거주지로 만든 다음 보상금을 쥐어줘 거주자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호화 아파트를 설계한다. 엄청난 주택 융자금에 묶어 있는 사람들은  갈 곳 없이 갇혀버린 셈이다. 전문 자격증은 아무 가치가 없고 인문학 학위증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사회 안전망은 작동하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빚을 갚는 데 소득을 다 써버린다.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그런데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직업, 아름다운 아내, 든든한 장인의 배경까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데이비드가 첼시마리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리처드 굴드는 데이비드를 첼시마리나로 이끈 것은 히스로 공항의 사건도, 전처 로라의 죽음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 원인은 훨씬 더 일상적인 요소라는 것, 즉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으며 현실에 쉽게 굴복하고 타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진짜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터무니 없는 저항운동을 통해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데이비드 역시 스스로도 첼시마리나에 드나드는 이유가 새로운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서임을 인지하고 있다.  






굴드는 모순적인 인간의 현실을 일길한다.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대면하면 겁에 질리고,진보와 이성의 힘을 믿으면서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에 시달리며, 성에 집착하면서도 성적 상상력을 터부시하고, 평등을 믿지만 하층민은 혐오한다. 자연 속에서 우연히 탄생한 존재일 뿐인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차별, 착취, 부조리 사회에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찾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양립하는 데이비드. 케이는 데이비드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첼시마리나 시위는 폭력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만, 데이비드에게는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테러범의 폭탄은 세계를 하나로 붙들어 두던 논리를 부수어 버리고, 잠재되어 있는 공포를 깨어나게 하며, 그 공포로 인해 평온한 일상을 뒤엎어 버린다. 테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세상이 생각보다 위험하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의미있는 곳임을 깨닫게 된다. 폭력이라는 불가해한 행위에는 논리적 행동이 범접할 수조차 없는 강렬한 진실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데이비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무의미한 살인이 갖는 의미. 굴드가 여성을 총으로 저격했을 당시 집 안이 아닌 현관에서 실행한 이유가 집 안을 보게 되면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되므로 더이상 무의미한 죽음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또 다시 신영복 선생이 떠올랐다. 눈맞춤만으로도 유의미한 존재가 된다는 선생의 말씀이.  


신의 구원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죄책감을 필요로 하는 모순, 이 역시 우리의 모습가 같다. 사랑과 평화를 설파하는 신에게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면서 현실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죄'를 저지르는 우리의 모습처럼. 신들은 죽었고, 사람들은 꿈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공허에서 태어나 잠시나마 자신의 근원을 되돌아보다가 다시 공허와 합류한다.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의 죽음은 한순간 세계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세상은 곧이어 침묵한다. 그렇기에 굴드는 목소리를 내어 말해야하는 거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불안을 조장해 사람들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는 굴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의 행동이기는 해도 리처드 굴드의 동기 자체는 고결했다. 그는 가장 무의미한 시대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존재의 오만과 시공간의 폭정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절망에 빠진 신인류의 시초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장 무의미한 행동을 통해 우주와 같은 게임 판에 올라 도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굴드는 게임에서 패했고, 결국 다른 사회 부적응자들과 같은 부류로 추락했다. 학교 운동장이나 도서관에서 무작위로 사람을 죽이고 다닌, 세상을 정화하려 시도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살인범들의 일원이 되었다고. 


어차피 굴드의 혁명은 시작부터 실패를 전제로 한다. 물질과 자본은 중산층을 순종적이고 사회의 규율을 잘 지키는 종족으로 만들었다. 다만 인간에게는 저항의 유전자가 있어 혁명을 개시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행복의 잣대가 되고 거대 자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굴복과 저항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폭력은 항상 불필요한 것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혁명이라면 늘 목표를 이루지 못해야 한다는 리처드 굴드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굴드의 혁명 방식과 자기부정에 반대했지만 첼시마리나와 그를 그리워하는 데이비드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된다. 


리처드 굴드는 자주 데이비드가 스스로 들어가 갇힌 거라고 얘기한다. 데이비드가 말한 '돌아갈 수 있는 내 진짜 집'이란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시대 프롤레타리아라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무의미의 쓸모'다.  


이름이 장르인 J. G. 밸러드. 

그야말로 밸러드가 밸러드한 소설이다. 




사족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작품 뒤에 실린 밸러드의 인터뷰였다. 2003년 대영제국훈장을 거절한 이유를 묻자 가볍게 웃으며 '거절'에 다들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드는 것 같다는 시크한 대답. 다르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닮은 듯한 리처드 굴드와 밸러드. 




#밀레니엄피플

#JG밸러드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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