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뮈엘 베케트
"당신들은 누구요?"
"우린 사람이오."
(p137)
선문답같은 등장인물의 대화와 부조리극으로 오래 전부터 유명한 이 작품은 한 번만 읽기에는 부족하다.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작품이다. 이번까지 세번째 읽는다.
50여년간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고도Godot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두 남자. 에스트라공은 이만 떠나자고 하고,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들의 하루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한 그루의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를 입씨름하고, 서로의 불만을 토로하고, 목을 매려다가 실패하고, 소년에게서 내일의 다짐을 받고, 고도를 기다릴 뿐. 이것이 반복되는 그들의 매일이다.
사뮈엘 베케트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통해 일상의 단조로움, 의미없는 행위, 현대인이 갖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극도의 개인주의로 깊어지는 외로움을 얘기하고 있다.
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는 블라디미르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뉘우친다는 에스트라공의 말은 획일화된 현대사회의 틀 안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을 밀어넣지 못해 도태되는 인간의 모습을 자조한다.
블라디미르는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당시 같이 못박힌 두 도둑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현장에 있었던 네 사람 중 단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도둑의 얘기를 썼는데, 후세 사람들은 오직 그 사람의 기록만 믿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에스트라공은 간단히 대답한다.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그렇다는 것. 이는 너나할것 없이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달려갈 때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알 수 없는 기준선에 도달하기 위해 자아쯤은 놓아버리며 안전을 명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권리를 헐값에 팔아버리고 이후에 찾아오는 자괴감에 우울해지는 우리네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럭키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포조에게 인간으로서 창피하고 파렴치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주인으로부터 겨우 얻어먹는 럭키의 뼈다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뜯는 에스트라공의 모습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아를 버리면서까지 복종하는 럭키에게서, 부조리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소모품처럼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그들의 대화를 읽자니 인생의 공허와 외로움을 새삼 느낀다.
2막에서 에스트라공은 혼자 있을 때가 낫다고, 그들은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말하면서도 블라디미르와 붙어다닌다. 이러한 모습은 버림받을 게 무서워 폭력을 감수하는 1막에서의 럭키와 닮아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 무엇을 염원하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1막과 2막의 차이를 보자면 일단 나무. 1막에서 묘사된 나무에는 마치 죽은 것처럼 잎이 전혀 없는데 2막 시작에서는 나무에 잎이 달려 있다. 두 번째는 검정색이었다가 흐릿하게 바랜 구두의 색깔. 이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기억하는 어제는 사실 훨씬 이전이었음을 암시하면서, 그들이 긴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고도를 기다려왔음을 얘기하고, 원을 그리듯 끊임없이 모자를 돌려쓰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단조롭고 반복적인 삶에 한 점 의혹과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인생이란 죽는 날까지 각자의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본질적인 삶의 근본이란 무엇인지를 고찰하게끔 한다.
앞이 안 보이는 포조가 누구냐고 묻자 블라디미르는 그들이 사람이라고 답한다. 여기에서 '사람'은 여러 의미로 이해된다. 현대인이 (럭키로 대변하는) 짐승과는 달리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혹은 사회적 약자를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와 노래와 춤과 연민의 '인간성'을 잃지 않았는지, 이것이 베케트가 독자와 관객에게 던진 질문이 아닐까.
흥미로운 점은 세상이,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그렇다고, 베케트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럭키가 어떤 잘못을 해서도 아니고, 그들의 운명이나 시대가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세상은,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인생은,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예외없이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떠나자고 말만 할뿐 정작 떠나지 못하는 에스트라공과 기약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가 같은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과는 반대로 포조와 럭키는 비록 앞을 못보고 말을 못할지언정 길을 떠난다. 새로운 길을 떠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안주한다고 해서 행복을 장담받을 수도 없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가다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데서 넘어진다면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떠나면 된다는 포조의 말에서 앞선 질문의 답을 대신할 수 있을 듯 하다.
151.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아마 그렇겠지.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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