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비 (數飛)

by 문득

친구 중에 희귀어-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용케도 찾아 스토리와 함께 알려주는 친구가 있다.


가끔 연락을 하면 " 너 이 단어 알아?" 라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톤으로

이야기를 해준다.

피곤할 때 들으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강의 주제를 찾고 있는 시즌에는 친구가 알려준 단어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삭비-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심지어 저 삭자는 '셀 수'자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 천자문을 공부했고 일본어까지 전공한 지라 한자들의 음훈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경한 단어라니!


어미 새가 새끼에게 나는 것을 거듭 가르친다는 뜻으로, 부모가 자식을 열심히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직 날 수 없는 민둥머리 새끼들은

어미쪽 방향으로 몸과 목을 최대한 앞으로 향하게 하여 먹이받을 확률을 높인다.

그리고 눈이 떠지고 깃털이 나기 시작할 때즈음 ,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어미의 모습을 보며 날개를 퍼덕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퍼덕거리는 행위는 보다 앞으로 몸을 기울게 하는 것, 날개죽지 근육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어느정도 성장한 뒤 날 수 있다고 판단 될 즈음.. 어미는 먹이를 입에 문채 멀리 떨어져

새끼들을 바라본다. 날아와서 받아 먹으라는 일종의 훈육이다.

여러 새끼들 중 가장 먹이를 많이 받아먹은, 일종의 리더격의 덩치좋은 새끼가 먼저 날개를 퍼덕거리며

상공을 향해 비상한다.


어미는 새끼들에게 이렇게 날으라고 혼내거나 재촉이지 않는다.

다만, 그 앞에서 직접 제대로 나는 방법을 보이면서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삭비로 배우는 해피엔딩. 새끼 스스로 날아올라 자기 삶을 찾아 가는 모습


작년인가 한탄강에 서식하는 새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어미가 알을 낳았을 때부터 품고 키우고 삭비하는 과정까지 다큐팀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찍었던 다큐였다.

드디어, 새끼들이 비상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날개를 펴는 가 싶더니 어느샌가 날개짓을 하며 날다가

그만 한탄강 그 험한 물살 속으로 빠져 사라져버렸다.


세상에나... 마치 반려동물 영상 찍듯 촬영을 한 터라 정이 들었을 텐데..

심지어 한 시간여 보는 나 조차도 이미 마음을 새끼한테 반 쯤 준지라

날개를 펴는 순간 울컥하기까지 했는데

이게 웬 새드엔딩이란 말이냐....


허망하게 끝이 나버린 삭비를 주제로 한 다큐..

그 드라마 한 편이 나와 아이들의 성장입시과정 그대로를 보여준 것 같아

눈이 팅팅 부어터질 정도로 울어버렸다.


정성을 다해 아이들 곁에서 내 영혼과 시간을 바쳐 키웠건만

아빠의 외도와 주취폭력으로 정서와 입시 모두 산산조각나 버린

우리 셋의 서사.


큰 충격이 있더라도 잘 극복 할 수 있게 이끌어줬어야 했는데

나는 어미새만큼 현명하질 못했다.

삭비를 못한것이다.


몇 해가 지난 지금, 아이들은 다친 마음을 회복하려 노력했고 다시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삭비는 완벽한 비상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었음을. 때로는 추락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보여주는 것이 진짜 삭비였던 것이다.

한탄강 새끼새처럼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은 상처를 딛고 다시 날개를 펼쳤다. 불완전했던 나의 삭비도 결국 아이들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씨앗이 되어, 스스로 일어서는 힘으로 자라났구나.

이제야 안다. 삭비의 진정한 의미는 완벽한 착륙이 아니라,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용기를 전해주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