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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붙인다는 것

전능함에 대한 환상

by yamani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없던 것을 존재하도록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개념은 이름 지어지며 비로소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들에 이름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든 '커튼' 너머의 진실한 세상을 애써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중세시대에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천구의 개념. 그러나 천구 위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에 우리는 별들을 포기하면서 우주를, 그 아득한 공간을 얻었다. 이제, 우린 어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서있다. 그럼 이제, 물고기를 포기하면 우린 무엇을 얻을까?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은 또 다른 어떤 실존적 변화를 불러온다. 별들의 경우에 꼭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이들에겐 별들을 포기하는 것이 혼돈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혼돈으로 가득하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약속 없는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출처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 / 정지인 역, 곰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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