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첫 장면

내 아들의 기원

by 유리산

2017년 6월 우리나라와 일본은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시 나와 지금 아내가 된 여자친구는 양가 부모님 몰래 해외여행을 떠났다. 각각 양가에는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으로 거짓말을 하고, 인천공항에서 새벽에 만나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내게는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이라는 타이틀이 처음인지라 핑크빛 생각으로 마음이 두근대는 시간이었다.


최대한 저렴하게 표를 구했기 때문에 항공기 꼬리에서 가장 가까운 맨 끝 열 좌석이었다. 드디어 여자친구라는 존재와 해외여행이라니! 꼬리칸이든 어디든 상관없어!


그날, 인천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로는 출발에 문제가 없었는지 시간이 되자 우리가 탄 비행기는 활주로에 들어섰고, 엔진소리는 점점 세게 내 귀를 메워갔다. 행복에 겨워 그윽한 눈빛으로 여자친구를 이륙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여자친구가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가 밥 먹으러 집에 한번 오래요."


창공으로 치솟던 홋카이도행 비행기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상승 내내 심하게 흔들거렸다. 분명 난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9급 공무원을 시작해 모아둔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었다. 30대 초반인 여자친구의 아버지께서 나를 보자고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렇다고 여행을 망칠 순 없었다. 최대한 멋지고 쿨하게 여자친구에게 언제든 좋다고 말해버렸다. 여자친구는 나의 즉각적인 반응에 기뻐했다.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까지 가기로 한 비행기는 도착지까지 가는 내내 몇 번의 돌풍을 만나 (내 느낌이지만) 몇 백 미터 아래로 수시로 떨어졌다 다시 날아올랐다. '여자친구 아버지께서 날 보고 못마땅히 생각해 헤어졌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면 어떻게 하지?'라던가, '혼기 찬 여자친구와 결혼을 서두르라고 하시면 모아둔 돈도 없는 내가 예- 하겠습니다 하고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같이 날던 비행기는 홋카이도에 도착했고,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다.


누가 "결혼"이라는 것의 첫 장면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은 장면이 내 결혼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아들에게 새벽 수유를 마치고, 문득 '내가 밤샘육아를 하고 있는 그 발단이 내 인생 어디쯤이었을까.'하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때 여자친구와의 첫 해외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마음이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정을 지나는 시점에 이제 태어난 지 38일째가 된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 아이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


2023년 6월 15일

꿈수유를 마친 어느 새벽,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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