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암환자가 되는 순간
* 22년 유방암 진단받고 선항암 - 수술 - 방사선 치료 이후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22년 유방암 확진 이후 투병기록을 하고 있고요. 유방암 치료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울대 유방외과 진료를 받은 이후 서류를 뗄 수 있었다. 질병분류기호 C50.91 유방암 확정.
이 C코드번호를 받아야 암보험을 비롯, 각종 보험회사에 청구할 서류들을 챙길 수가 있기 때문에 미리 병원에 서류를 신청했다.
암확진이 나게 되면 이후 서류를 뗄 수 있고 병원에서 바로 산정특례 신청을 할 수 있다. 산정특례등록으르 하고 나면 병원비에 대한 압박에서 조금은 해방이 될 수 있기에.
큰 병에 걸리고 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산정특례 제도가 있어서 그나마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
유방외과에서 정확히 암진단을 받고 선항암 8회를 먼저 하자고 했다.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이 편해졌다. 항암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림프까지 전이가 있었고 사이즈가 있으니 어떻게든 줄여서 수술을 하자는 견해였다.
나는 뭐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진단을 받았던 그 쯤에 이상하게 유방암 환자가 많았다. 대기실은 넘쳐났고 5분마다 유방암 환자를 만나야 하는 교수님은 얼굴에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질문들을 할 겨를도 없이 나는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사실은 머릿속이 여전히 멍한 상태였기 때문에 질문을 하나도 하지 못했던 것도 맞다.
그 이후로 나는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조건 메모했다가 의사를 만나는 짧은 순간이 올 때마다 속사포처럼 질문했다.
"선항암은 약을 바꿔서 8회 정도 하게 될 거예요. 수술은 그다음에 해보도록 하죠."
"수술하면 가슴이 다 없어질까요?"
"항암 결과가 어떠냐에 따라서 부분절제를 할 수도 있고, 전절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항암 열심히 잘하면 되겠죠?"
"일단 항암 끝나고 봅시다."
선항암 얘기를 듣고 나는 내 가슴의 존재가능성에 대해서 물어봤다. 처음엔 그냥 가슴을 다 떼어내더라도 내 몸에서 암덩어리가 없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다 그래도 가슴이 남아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 상기 환자 유방암 진단으로 선행항암화학치료 후 입원하여 유방절제술 시행할 예정이신 분임
유방절제술이라는 단어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받은 C50.91 질병코드번호
나는 그렇게 서류상으로도 암환자가 되었다. 항암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서웠지만 그 항암이 끝나고 나면 암세포가 다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다 잘라내야 하는 가슴이 아니라 조금은 살릴 수 있는 가슴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항암 하면 힘들겠지? 잘 견뎌보자."
같이 병원에 들렀던 남편이 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치료가 있고 치료하면 나아진다는 게 좋은 일이잖아. 항암도 하고 방사선도 하고 수술도 하고 그리고 또 하라는 거 있으면 다 하고, 그리고 나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거야."
"그래."
"가슴이 그냥 나한테 남아있어 주면 좋겠어."
"....."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나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항암 할 거야."
그건 그냥 바람이었다. 사실은.
그런데 항암 하는 내내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문처럼 외웠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힘들 때마다 계속 "예전으로 돌아가자."를 되뇌었다.
진짜 소원은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돌아가자> 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