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던 상처, 상처였던 사랑 (1)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컸던 감정들에 대하여

by 율무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누구나 그렇듯, 우리 가족도 사랑을 주고받으며

상처도 함께 건넸다.


예민한 아이의 세상,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믿음

돌이켜보면, 나는 감각이 예민한 아이였다.

스카치테이프 뜯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파리 한 마리만 날아다녀도 울음을 터뜨렸다.

양말 안쪽의 보풀이나

티셔츠 라벨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엄마는 매번 옷의 태그를 잘라주어야만 했다.


아빠 친구의 아기들이 나를 깨문 날이면,

그 아이를 다시 만나는 날에는

나는 벽장 안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와 아빠는 종종

"다른아이들은 안그렇던데"

"예민하고 유별나서 키우기 힘든 아이"

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은 낯선 이들 앞에서 반복되었고,

어느새 나 스스로도 그런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내가 늘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말이 가시가 되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이 다르면 쉽게 표현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솔직함이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미 내향적이던 성격은

더욱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방향으로 변해갔다.

그 무렵부터, 내 삶은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혼하지 않은 이혼가정


우리 가족은 법적으로는 이혼 가정이다.

하지만 동생과 나를 이유로,

두 분은 함께 살고 계셨다.

나의 뿌리와도 같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일은

어린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다.


어린 시절, 내가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와 아빠는 매년 적게는 몇 번, 많게는 수십 번

큰 소리로 다투거나,

때로는 몸싸움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TV 속에 숨긴 비명

동생이 태어나기 전, 네 살도 채 되기 전의 기억이다.

다른 장면은 희미한데도,

바닥에 앉은 아빠가 엄마의 머리채를 쥐고

식칼을 목에 들이밀던 순간과

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버티던 엄마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TV를 바라봤다.

하지만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고,

TV 속 장면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는

그날을 이야기하며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싸움이 벌어지면 울며 뜯어말리던 내가,

그날 이후로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고.


지금 돌아보면,

그건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내 노력이 아무 의미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그 공포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서툰 사랑의 흔적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정말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사랑을

키워 본 적 없었기에 그 사랑은

자주 미숙한 방향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기보단 상처로 더 많이 느꼈다.



천천히, 나를 어루만지며

서른이 넘은 지금,

그 사랑이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상처를 하나씩,

천천히 어루만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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