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던 상처, 상처였던 사랑 (2)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무게였던 말들

by 율무
외로움이라는 친구

언제나 곁에 있었던 소외감의 그림자


유년 시절의 나는

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친구처럼 데리고 다녔다.


어디서나 소외감을 느꼈고,

무리에 쉽게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안고 살았다.



마음은 길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학창시절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내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사랑을 건네주었다.


그때의 나는 머리로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 그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내 안의 어떤 감정이

따뜻함을 음미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었던 것 같다.



표현해도 닿지 않던 마음

스무 살 이전의 나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내 상처를 드러내 보기도,

화를 내기도, 울어보기도,

편지를 써보기도 했다.


내가 화를 낼 때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목소리를 높이셨고,


내가 울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편지를 써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을 땐
읽으신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어떤 답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10대 후반쯤에는

점점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사랑이라 믿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아기 고양이를 집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가시 돋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서운함을 조금 과하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아빠가 나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손찌검을 한 날이 가끔 있었다.


그럴 때면
울고 있는 내게 엄마는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래.
네가 이해해.”


나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때렸던 날

아빠는 간식을 방에 가져다주시고,

나를 안아주셨다.

내가 아플 때 엄마는 밤새 병간호를 해주셨고,

늦게 학원을 마치는 날에는

두분이서

강아지를 태우고 데리러 오시기도 했다.


그 기억들 안에서 나는,

그래도 모든게 사랑이라 믿으려 애쓰며

부모님을 이해하려 했다.



작은 어깨에 흘러든 이야기들

주로 아빠께서 소비 문제나 외도로 인해

엄마를 마음고생시키는 일이 많았고,

엄마는 그 상처를 풀어낼 곳이 없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게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작고 어렸던 나는

그때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 대화의 끝에는 언제나

"엄마는 다 버리고 싶지만, 너희 때문에 사는 거야"

라는 말이 따라붙었고,

그 말은 사랑과 감사의 감정만큼이나

"엄마의 마음이 변하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어린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착해지기로 했다

그 말이 내게 남긴 것은

엄마의 삶에 내가 전부라는 무게감과,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이었다.


어쩐 일인지, 부모님이 너무 싫으면서도

그들이 돌아가신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울며 잠든 날이 많았다.


부모님을 잃은 뒤 내가 느끼게 될 후회와 슬픔이 두려워,

그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분노와 아픔을 눌러담고

그저 '착한 딸'이 되겠노라 다짐하곤 했다.



불쌍하다는 말의 굴레

조금 더 자란 어느 날,

나는 조심스레 엄마에게 이혼을 권해보기도 했다.


"엄마, 나는 정말 괜찮으니까...

엄마가 너무 힘들면, 그냥 이혼해."


"너네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면 안 돼.

상상만 해도 너무 불쌍해서 안 돼."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이혼을 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불쌍하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엄마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괜찮아.”
그 말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엄마의 마음에 닿을 수 없는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엄마를 설득하려 꺼낸 말들은
결국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았고,


나는

‘누구도 불쌍해지지 않게 하려는 아이’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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