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었던 상처, 상처였던 사랑 (3)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도망치기까지

by 율무
사랑은 빠르게, 상처는 천천히 왔다

20대 초반, 세 해를 함께한 연인이 있었다.

처음엔 많은 것이 잘 통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속도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빠르고 부드러웠고,

나는 그의 곁에 있는 시간이 좋아
기꺼이 타지로 몸을 옮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의 집착과 분노는 조금씩 농도를 더해갔다.


처음엔 사랑이라 여겼던 감정이,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는 걸


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차렸다.



낯선 도시, 낯익은 상처

그의 상처가, 나의 잘못이 되던 날들


나는 그 안에서,

그동안 외면해왔던 부모님의 싫은 모습을

수도 없이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검열하며 살아야 했다.


감정을 꺼내면

그는 그것을 자기 비난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나를 공격했다.

자신의 상처를 핑계로

그와 관련된 주제는 입에 올리지 못하게 했고,


나의 관계가 결국에는 자기 소유가 되길 바랐다.


앞에서는 내 친구들을 험담하며

내 인식을 흐리게 했고,

뒤로는 본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내 친구들에게

우리 관계를 상담하며 나를 조용히 깎아내렸다.



그를 안아주면, 내가 무너졌다

집착과 통제 속에서 자기효능감을 좇던 시간


처음 그런 모습을 마주했을 땐

상처받으면서도,

나는 그가 불쌍하다고 여겼다.

사랑을 충분히 주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었고,

그 안에서 내가 느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향해

스스로를 다잡으며 노력했다.


그러나 3년 후 어느 날, 거울 속 나는

살이 6kg이나 빠지고 얼굴과 눈에는

그늘이 깊게 내려앉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었다.


억울함, 분노, 슬픔이 뒤엉킨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때,

“어차피 이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되돌릴 수 없다는 마음에,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 입속에서, 나도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관계를 포기할 수 있는 권리조차 잊은채

아주 천천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하루를 그려보곤 했다.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포기는 응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걸.



기도는 닿지 않았다

대가로 주어진 자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름도 없는 어딘가에 마음을 띄웠다.

“오늘은 제발,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 기도는 닿지 않았고,

늘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겉으로 본 그는 다정했다.

원하는 곳엔 데려가 주었고,

갖고 싶다 말하면 무엇이든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 모든것의 대가로 단 하나 —

나의 ‘아니오’는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요구를 끝내 삼키지 못했다.

그러면 그는 늘,

‘넌 참 인생 쉽게 산다’며 나를 깎아내렸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것은

끝내 마음에 묻어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나에게 던졌다.


나는 그걸 죄처럼 뒤집어쓰고,

매번 똑같은 싸움을, 같은 이유로 반복했다.



놓을 수 없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돈과 불안에 묶인 끈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만두지 않았냐고?

그 당시 우리는 내가 빌려준 카드로 인해

금전적으로 얽혀 있었고,

손을 놓는 순간,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두려움에 손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내 안의 불빛은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속상한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아

부모님과의 통화도, 만남도 피했다.


가끔 본가에 가는 날엔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방에 들어가선 조용히 싸움을 이어가거나

침묵 속에 시간을 버텼다.



첫 독립, 말하지 않아도 아팠던 기억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온 날,

아빠는 나에게 보험청구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지쳐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했지만,

아빠는 언성을 높이며 재차 요구하셨고

나는 결국

“그렇게 원하신다면...

피보험자는 아빠잖아요. 직접 하세요.”

라고 답했다.


그 말에 아빠는 “날 무시했다”며 격분하셨고,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조용히 짐을 챙겼다.

문을 나서기 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울 것 같아서.


그렇게 나의 첫 독립이 시작되었다.


이후에 얼렁뚱땅 화해가 이루어졌지만,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내가 “쫓겨났다”고 표현하는 걸 싫어하신다.

그건 쫓아낸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간 거라고,

그 말은 틀렸다고, 고쳐야 한다고 하신다.

그 대화가 반복되자, 결국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생각을 말하면, 반박이 되었고
내 감정을 말하면, 공격이 되었다.

그들의 곁에 있을 땐, 나는 짐이었고
사라지면, 불안이었다.


존재하는 나도,
존재하지 않는 나도,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늘이어도 괜찮았다, 기댈 수만 있다면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또 다치게 했다


그는, 망가진 관계 속에서도 나에겐

기댈 수 있는 언덕이자 그늘 같은 존재였다.


나에게 집착하는 것도,

‘사랑해서 그런 거겠지’라고 이해했고

나를 무시하는 것도,

‘그가 나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으니까,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라고 생각했다.

아빠도 화가 나면 폭력적이니까,

‘남자들은 원래 그런가보다’라고 믿었다.


‘나만 입 다물면, 이 관계는 문제없어.’


나는 그보다 나은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 나은 사랑을 꿈꿀 수는 있어도,

실존한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랑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에

지푸라기처럼 매달리며

그게 사랑이 아니더라도,

“이건 사랑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던

내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아프게 만들었다.




#감정에세이 #자기돌봄 #연애의민낯

#독립일기 #가족이야기 #마음회복

#상처받은사랑 #그때의나에게 #자기이해

#폭력적인관계 #이별후기 #사랑과집착

#브런치에세이 #감정기록 #나를위한글쓰기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었던 상처, 상처였던 사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