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 경기가 꼭 한 번은 있다 #220810_롯데 vs. 키움
둘 중 야구를 더 잘할 거 같은 이름을 골라보시오.
①윤후
②용수
이름에도 인상이 있다며 심각하게 고민했다면 조금은 가벼워져도 된다. 정답을 굳이 꼽아본다면 2번 용수다. '굳이'라고 단서를 붙이며 모호하게 답한 이유는 둘은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때 용수가 지금의 윤후다. 용수도 윤후보다 나을 뿐, 야구를 잘한다고 말할 순 없다. 타율로 봤을 때도, 이름의 유명세로 봤을 때도. 이 선수를 기억할 만한 뾰족한 구석이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선수가 개명을 했을 때 더 잘되길 바랐던 걸까.
때는 2022년. 대략 10년 만에 가는 직관이었기에 라인업에는 낯선 이름의 선수들이 많았다. 내가 알던 선수들은 이 팀을 떠났거나 야구를 그새 관뒀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며 시간 참 빠르다하는 세월감과 1년 내내 운동하는 야구 선수들도 코로나를 피할 순 없구나하는 마음으로 고척돔으로 향했다.
친구가 준 유니폼을 빌려 입고, 봉다리가 아닌 낯선 짝짝이를 박자에 맞춰 흔들었다. 가사 숙지가 덜 되어서 묘하게 어긋나는 나의 엇박 응원 때문일까. 경기는 0:1로 지고 있었다. 1.5군의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다행이다 여길 정도. 오늘 내 뇌리에 큰 한방을 남기는 선수의 이름으로 유니폼을 파고 싶었는데, 경기는 힘없이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낯선 이름의 선수들과 친해지기 위해 전광판에 뜨는 타율을 열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9번 타자의 이름이 바뀌었다. 대타구나. 용수라는 이름과의 첫 만남이었다. 내가 이를 또렷히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 본 타율 때문이다. ‘0.083‘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도 3할 타자라는 말은 들어봤을 것이다. 10번 중 3번은 친다는 그 3할 타자. 그런데 내 눈 앞에 8푼 타자가 등장했다. 10번 중 0.8번 친다는 것은 도대체 눈으로 그려지지 않는 숫자였다. (100번에 8번인 거 안다. 그런데 100번에 8번은 나도 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2루에 서 있는 발 빠른 주자가 아까웠다. (당시 감독이던 서튼은 플래툰을 참 좋아했다)
김이 팍 세 버리기도 전에 친 초구는 2점 홈런이 되었다. 기대가 없었던 만큼 놀랐던 나는 내내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떼고 기립하고 말았다. 야구는 매년 144경기가 있으니, 144명의 주인공이 있는데 (가을야구 하는 팀은 더 많겠지요.) 이 경기는 신용수의 인생 경기였다. 144번 중 1번 나올까 말까 한.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친구의 만류 끝에 이 선수의 유니폼을 구입하진 않았다. (고마워 친구야) 대신 이 선수의 이름이 아주 가끔 전광판에 뜰 때마다 그래도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윤후라는 이름으로 개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름이 달라졌으니 실력도 달라질까 궁금증이 생겼다. 개명한 야구 선수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름을 바꾼 이후에 이름을 떨친 선수들도 꽤나 있으니 이 선수는 어느 쪽에 서게 될지 지켜보기로 했다. (자이언츠 선수들은 손아섭 선수가 방문했던 철학원에 가서 이름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름에는 어떤 기운이 깃들어져 있다고 믿는 나이기에 바뀌기를 바랐다. 동시에 실력이 바뀐 게 단순히 이름 덕분이야라고 퉁 쳐지는 것도 바라지는 않았다. 혼자만의 갈등이 무색하게 개명과 야구 실력 사이에 결정적인 상관 관계는 없구나라는 다소 시시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 선수를 오래 지켜봐온 건 단순히 이 가설을 확인하는 데 있지만은 않다. 기억하기 위해서다.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리고 나도 인생이란 경기에서 한 번은 꼭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알려줬다. 누군가 기대하지 않을 때 역전 홈런이란 반전을, 어퍼컷을 한 방 날려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이런 때는 반드시 온다고 믿게 한다. 그러니 8푼 타자여도 좋으니 우리 타석에 서는 것을 두려워 말자. 휘두르자. 휘두르고 휘두르다 보면 한 번은 넘기겠지. 주어지는 타석이 넉넉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용수의 인생 경기는 이미 보았으니 윤후의 것을 보는 날이 머지 않았길.
+덧붙이는 이야기
왜 이렇게 이름에 과몰입을 하냐면 가장 좋아하는 시가 김춘수의 꽃이고, 동시에 90년대생 인기 1위에 빛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30명 중에 나랑 똑같은 이름이 4명이나 있던 때가 있다. 중학생이던 나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컸었다. 어린 나이지만 어렴풋이 알았다.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면 다른 무엇 하나는 꼭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좋아할지 고민하게 됐다. 이때 미쳐야 미치는 나의 본성을 깨달았다.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름 덕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