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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Jan 18. 2016

'나'의 사랑, '나'의 즐거움

어린이 그릇에 담아낸 능동적 즐거움

'하다'와 '해주다'

A. 사랑한다. 전화를 걸고, 약속을 한다. 함께 영화를 보고, 밥도 먹는다. 숟가락을 놓고, 물을 따른다. 음식을 앞접시에 덜어 놓는다.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신다. 이따금씩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함께 쇼핑을 한다. 선물을 한다. 때로 이해되지 않는 연인의 행동에 화를 참는다. 민망한 실수는 못 본 척 넘어간다.
B. 사랑받는다. 드디어 마음을 내어준다. 누군가는 전화를 기다리고, 누구는 전화를 걸어준다. 영화를 예매해 보여주고 밥도 사준다. 숟가락을 놓아주고 물을 따라준다. 음식은 앞접시에 덜어준다. 차를 사주고, 술도 사준다. 누군가는 차도 마셔주고 술도 마셔준다. 요리를 만들어준다. 쇼핑을 따라가 준다. 선물을 사준다. 때로 이해되지 않는 연인의 행동에도 화를 참아준다. 못 본 척 넘어가 준다.


연애할 때 습관적으로 B의 표현을 많이 쓴다. 나는 그런 표현을 몹시 싫어한다. 차 한잔이라도 사준다는 사람과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사준다는 행동에는 부정어가 어울린다. '(내키진 않지만) 내가 사줄게.' (2) 사주는 사람 앞에 나는 받는 사람이 돼버린다. 선물을 사주면, 선물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 좋을 때야 마냥 좋지만, 싸우기라도 하면 이런 표현은 문제가 된다. "너의 이유 없는 짜증도 받아주고, 선물도 사줬는데 넌 내게 왜 이러냐" 하는 식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짜증을 받아달라 구걸했던 사람도, 선물을 사달라 조르던 사람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 화를 참았을 뿐이고, 선물을 샀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이것은 마음이 '그냥' 움직여 어딘가로 향하는 능동적인 감정이다.



1950년대 노르웨이 생산 빈티지 찻잔  (Stavangerflint) / 단면 1
Handsome boy 라는 컨셉으로 다섯명의 소년 혹은 요정을 묘사했다 / 단면 2


새가 지저귀는 화창한 날, 세 명의 소년이 놀고 있다. 한 명은 뒤춤에 파이를 숨기 고선 시치미를 떼고, 반대편의 한 명은 화난 듯 눈을 크게 뜨고 이 아이에게 으름장을 논다. 옆의 아이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조용히 웃으며 지켜본다. 또 다른 상황. 한 소년은 피리를 불며 앞장서고 다른 소년이 북을 치며 뒤따른다. 다람쥐는 놀란 눈을 하고 서서 이들을 지켜본다.


이 아이들 사이에는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컵을 묘사하는 모든 문장은 3 형식. 주어가 목적어를 하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하면 그만, 수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 보인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이런 3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이 같은 즐거움이 깃들어야 한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좋아하는 사람을 한껏 사랑하는 것. 이것이 연애에 대한 나의 고집 혹은  똥고집이다.



'갑'의 연애와 '을'의 연애


나의 연애철학은 적극적으로 지지받지 못했다. 다툰 후 연락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친구에게는 먼저 연락해보라, 헤어져 미련이 가득한 동생에게는 가서 잡아라, 고 혹은 스톱. 늘 단답형으로 끝나버리는 탓에 그녀들은 나를 연애 상담의 상대로 삼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하지 말고 연락이 오게 해야 한다는 둥, 너무 잘해주면  안 된다는 둥,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둥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받는, '갑'의 연애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나는 정말 쓸모없었다. 그들의 철학에 따르면 나는 여우보단 곰에 가까운, 질리기 쉽다는 연애 대상자요 '을'의 연애에 전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나의 마음에 충실한, 따지고 보면 꽤 이기적인 연애를 추구한다. 사랑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지겨워지는 것, 그래서 마음이 멀어지는 것. 연애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이런 부류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안타깝기야 하겠지만 지겹거나 멀어지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에 대한 것은 소관부처도, 담당자도 '내'가 아니다. 그럼 나는 나의 업무, 나의 일만 똑바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 마음이 다 하지 않았다면 멀어지는 연인의 등을 똑똑 노크해보고, 좋은 사람에겐 몇 번이고 연락을 해보는 것. 물론 자존심이야 상하지만, 정 자존심 상해 못 참겠으면  그땐 나의 마음도 자동으로 멈춰진다. 나의 마음만 들여다보면 되니 이것이 더 쉽고 명확한 방식이 아닐까. 나는 갑도 을도 아닌 그저 연애를 하는  것뿐이다.



본능적이고 능동적인 사랑을 위한 교정


일상을 생각해보자. 해줘야 하는 일들에 치어 산다. 출근하면 답해줘야 하는 이메일들이 쌓여있고, 시간 안에 처리해줘야 하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일들은 메일에 '답하고', 기한 안에 처리 '하면서' 정작 소중한 옆사람에게는 선물을 '해주고' 연락을 '해주는' 것이 맞는 걸까. 이건 무슨 쓸데없이 능동적인 employEE. 자신이 고용주인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챙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이처럼 본능적이고 능동적인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그간 들었던 말 중 거슬렸던 몇 가지 표현을 적어본다.


(예문) 처음엔 그리 쫓아다니다 마음을 주었더니 등 돌리고 가버리는 배신자

(정정) 처음엔 별로였지만 사랑했고 이제는 멀어진 한 때의 연인


(예문) 다 해줄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줄게. 오래오래 아껴줄게.

(정정) 마음을 다할게. 손에 물 한 방을 묻히지 않게 노력할게. 오래오래 아낄게.


(예문) 결혼해줘.

(정정) 결혼하자.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직업도 변변치 않고.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영화 속 이야기가 돼버린 요즘이다. 그런데 그 영화가 현실이 되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마저 굳이 손익계산서를 돌리며 복잡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아이처럼 사랑하고 즐거워질 수 있는 어른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Villeroy & Boch 사의 Design Naif 크리스마스 접시


아이들이 눈밭에 춤추며 논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춘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썰매를 타고 나무를 하러 간다. 원래 우리의 마음도 언젠가는 다 이랬다. 놀고 싶어 놀고, 하고 싶어 했다.  배워야 할 기술이 많고, 해야 할 일이 참 많은 세상인데 적어도 사랑만은 /쫌/ 이렇게 즐거워도 좋지 않을까. 무언가 '해주는' 연애가 아니라 무언가 '하는' 연애. 능동적이고도 단순한 마음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이 그릇들에 음식을 담아내며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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