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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Dec 21. 2015

다시 설렘, 올해도 너와 차 한잔

두 여자의, 꼴 사나운 크리스마스 이야기

크리스마스는 모두를 설레게 한다. 반짝이는 조명, 귀여운 장식들과 거리의 예쁜 풍경이 겨울 추위도 아름답게 빛낸다. 아름답다.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 생각에 동의하는 가까운 친구가 있다. 복잡한 문제들은 뒤로하고 재미있게 노는 게 좋은 우리는 작년 크리스마스를 위한 이벤트를 만들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쿠키 굽기다. 베이킹은 참 여러모로 좋다. 만드는 사람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와 그 따스함에 마음이 둥글어지고, 받는 사람도 쿠키를 한 입 베어 물면 스트레스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간식이니 여럿이 나누기도 좋다. 참으로 적절한 이벤트다.



만남을 앞에 두고 집에 이런저런 베이킹 도구들을 꺼내 두었다. 재료를 사러 친구와 마트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 집을 나서다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 유리조각 파편을 맨발로 디딘 것이다. 아뿔싸. 유리조각은 발바닥 깊이 들어갔는지 도저히 혼자 해결이 어려웠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와인잔을 깬 것은 거의 두 달 전인데,  그때 파편이 오늘 청소 중에 어쩌다 기어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필 나의 이동경로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것이다. 발바닥에선 피가 흐르고, 나는 난감했다. '약속을 깨야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어느 병원을 가야 하나


이미 혼자 해결하려 시간을 지체한 터라, 빨리 병원에 갔다 마트로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 어느 병원을 가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적어도 난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 끝에 지인에게서 피부과로 가보란 말을 듣고선 병원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지만 참 많은 눈총을 받았다. 멀쩡한 아가씨가 한겨울에 한쪽은 양말도 신지 않은 채 깽깽이 발을 하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리 흔한 구경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 병원이 아니란다. 절개하고 파편을 꺼낼 도구가 없다는 답을 듣고 나는 다음 병원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선 길 건너 성형외과를 추천했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이 수술 중이라는 두 번째 병원. 나는 결국 한 시간 가까이 '그 꼴로' 거리를 헤맸다.


이쯤 되니 시간도 늦었고, 나는 기분도 상했다. 발도 아팠고, 꼴도 우스웠고, 혼자 이렇게 다녀야 한다는 게 외롭고 처량했다. 스트레스 받았던 마음, 이렇게 한번 달래 보자는 게 그리 어렵나 하는 생각에 속상했다.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싫었다.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천천히 와. 안에서 기다릴게.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다린다는 친구에게 차마 취소하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해 또 병원 원정을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외과로 갔다. 마취를 하고, 절개를 하고, 파편을 빼냈다. 절뚝거리며 서둘러 마트로 향했다. 태연하게 기다리던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웃고 말았다. 참 별일이다.  가지가지한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고 나니 그 한 시간의 모든 짜증은 순간 풀려버렸다. 


그렇게 모든 에러는 끝나나 싶었다. 쿠키를 한참 굽다 잠시 짬이 나는 사이, 친구의 목소리가 상기됐다. "이게 뭐야." 집안 어디서 다쳤는지 친구의 발톱 하나가 제대로 들렸고 피가 났다. 피는 마치 참새가 총총 걸은 자국처럼 방바닥에 퍼져있었다. 아.. 정말 이럴 수가 있나. 게다가 친구는 힐을 신고 왔으니, 그 발을 신발에 구겨 넣고 온 체중을 의지해야 했다. 맙소사.


어떻게 해서 건 하던 걸 마저 만들자는 일념 하에, 한 명은 발에 붕대를 감고 다른 한 명은 발톱을 휴지로 감고, 베이킹을 계속했다. 초콜릿 한판, 얼그레이 한판, 진저 한판. 그렇게 3종 세트를 굽는 동안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파서 웃고, 꼴 사나워 웃고, 처량해서 웃었다. 아까는 분명 같은 이유로 울었건만, 같은 이유로 웃고 있다. 아끼는 찻잔을 꺼내 좋은 차를 곁들였다. 따뜻했다.


울고 말았을 일을 하하호호 웃으며 마칠 수 있었던 건 소중한 사람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되니 우리는 또 무슨 재미난 일을 할까 궁리하며 설렌다. 다시 설렐 수 있는 것, 누군가와 함께했던 차 한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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