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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Nov 24. 2015

엄마의 마음을 담은 찻잔

알아서 잘 살 수 있다는 세뇌 아닌 세뇌

"택배입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 9시. 주말 기운을 만끽하며 늦잠 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그러나 나는 분명 주문한 물건이 없다. 혹시 사놓고 잊은 게 있나 생각해봐도 아니다. 문을 열었더니 이름을 확인하고 작은 상자를 건네신다. 보내는 사람 란에는 엄마 이름이 적혀있다. 여느 때라면 음식을 보냈을 테니 꽤 큰 박스가 왔을 텐데, 이번엔 우체국에서 파는 2호 박스로 참 작은 사이즈다. 무얼까? 전혀 감이 안 잡혔다. 

박스를 열어보니 엄마의 메모부터 보인다. "딸! 따뜻한 겨울이 되겠다. 땀띠 조심해." 열어보니 엄마가 손수 짠 목도리가 들어있다. 핀란드에서 예뻐 사온 털실을 보낸 게 불과 며칠 전이다. 할머니 병원에, 주렁주렁 열린 감 따기에, 이것저것 분명 지난주 내내 바빴던 것을 알고 있었다. 틈날 때마다 얼마나 바삐 만들었을지가 눈에 선하다. "다음번 집에 갈 때 가져갈게." 목도리 없어 얼어 죽지 않으니 심심할 때 만들어달라  이야기했었다. 당연히 연말쯤 둘러봐야지 생각했었다. 이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이었다. 그래. 내가 잊었다. 우리 엄마는 일을 남겨두고선 못 견디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늘 1순위다. 갈비찜이 먹고 싶다 아빠가 한 달을 노래 불러도 꿈쩍 안 하다, 내가 먹고 싶다면 그 길로 당장 정육점에 가는 게 엄마다. "아빠도 딸로 태어나지 그랬냐." 나는 아빠한테 종종 위세 떤다.

자취가 근 10년이 되어가도록 엄마는 철마다  그때 먹어야 할 음식을 챙겨주신다. 지금 시즌에만 나오는 골드키위, 가을에 막 수확한 은행, 신선할 때 냉동해 둔 알밤,  올해 나온 찹쌀로 손수 만드신 쑥개떡 등이 지금 나의 냉장고를 채우고 있다. 매번 시즌마다 함께하는 품목이 다르다. 택배로 받을 때도 있지만, 집에 서너 달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갈 때 빈 트렁크를 가져가 음식들을 가득가득 채워오는 게 보통이다.



"선물 들어왔는데, 너 쓰면 예쁠 것 같아서."

작년 봄 집에 갔을 땐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찻잔세트였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늘 예쁜 그릇에 밥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나다. 재래시장을 가도 그릇 가게는 꼭 들렀다. 혼자 사는 집이어도 찬장 가득 그릇을 돌려쓰며 살고 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너무 잘 안다. "응. 가질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부엌 구석에 숨겨둔 찻잔을 조심히 꺼내 보여주셨다.

카푸치노 머그 사이즈의 컵과 소서 2조 세트였다. 오른손잡이가 잔을 들었을 때 차를 마시는 사람은 흰 면이, 반대편의 상대방은 꽃무늬를 보게 만들어졌다. 사실 마음에 100% 들진 않았다. 나는 내가 꽃을 보고, 상대가 흰 면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소서에도 같은 꽃무늬가 작게 있었음 예뻤겠다 싶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차를 대접할 때 "아, 그릇 좀 골라 쓰는 군." 소리 들을 수 있겠다 싶은 유럽 브랜드의 제품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딸 주려고 부엌 안쪽에 곱게 모셔놓았을 그 마음이 감사해서 일단 들고 왔다. 딱히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유독, 기분 나쁜 날이나 고민스러운 날은 우연히도 이 잔을 꺼내게 됐다. 여전히 나는 내가 꽃을 보는 게 좋으니 잔은 왼손으로 들어야 했고, 왼손으로 들면 불안정하니 잔을 두손으로 들어야 했다. 두 손으로 찻잔을 채운 차를 불고 식혀 마시다 보면 가슴 한 구석 어딘가 따뜻해졌다.


나는 참 고집이 센 아이였다. 

동생이랑 싸운다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도, 스스로 왜 잘못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으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래. 매를 벌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얄미웠을 거다. 혼내다 화가 났을 것 같다. 동생은 달랐다. 엄마가 매를 가지러 가기만 해도 무릎 꿇고 싹싹 빌었다. 나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비는 건 어린 내게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왜'가 중요했다. 나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했다. 그냥 하란대로 해! 혹은 다들 하니까 해! 하는 식의 논리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반 강제로 행했던 고등학교 1, 2학년 방학 보충학습도 하지 않았다. 고 3 야간 자율학습도 하고 싶다 싶을 때부터 참석했다. 


"알아서 잘 하니까-"

부모님은 늘 찬성이셨다. 아이가 원치 않으니 자율학습에서 빼 달라는 이야기도 잘 해주셨다. 더 어렸을 때도 그랬다. 취업을 하고 싶다 할 때도 OK,  퇴사하고 싶다 할 때도 OK, 유학을 가겠다 해도 OK, 연애도 그냥 OK, 모든 것들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했다. 그렇다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줬으니 잔소리 말고 하란대로 하라는 편도 아니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나는 독서, 일기, 학습지, 숙제 따위를 강요당한 적이 없었다. 공부해라, 취업해라, 저금해라, 결혼해라 그런 이야긴 우리 집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된 후, 어떻게 내가 하고픈대로 하게 할 수 있었냐 물으면 그저 "알아서 잘 하니까~"라며 쿨하게 말씀하신다. 어디 가서 누군가 어떻게 딸을 그렇게 키웠냐 물으면 부모님은 "우리 딸은 그냥 알아서 잘 했어." 하신다. 이런 이야기에 난 좀 부끄럽다. 그러나 이런 이야길 하도 많이 들으며 자라 그런지 난 세뇌된 것 같다. 뭔가 문제에 한참 고민하다 보면 "난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아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부모님의 고도의 심리전인지;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그 믿음의 원천이 무언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교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등학생 딸이 학교 애들 다 하는 야자를 못하겠단다. 여러 아이들을 통제해야 하는 학교에서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으름장을 놓는다. 여기서 딸이 왜 못하겠다는지 아는 부모님과 모르는 부모님의 반응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이의 생각을 이해한다면 아이의 생각이 가진 정당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모르는 부모는 "애들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며 아이를 야단칠  수밖에 없다. 


입시, 입사, 결혼 등 인생의 큰 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부모 자식 간에 교감이 있으면 특정한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굳이 번거롭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선 과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할 수 있고, 자식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설명을 하지 않고도 동의를 얻었기에 부모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이런 점에서 우리 집은 교감의 장이 잘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고3 때도 엄마는 내가 못 본 드라마를 녹화해놓고, 녹화된 드라마를 볼 때 먹을만한 간식을 미리 만들어주셨다. 급식밥이 싫다는 내게 기꺼이 점심 저녁 도시락을 두개씩 만들어 주셨다. 퇴근이 늦은 아빠 덕분에 밤늦은 간식 역시 매우 잦다. 이 때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그때 만난 소개팅은 어땠나, 요즘 드라마에 나오는 누가 멋있더라, 새로 나온 핸드폰이 좋다더라 등등. 대부분은 매일같이 전화 통화하며  업데이트한 것의 연속.  전화회의하다가  대면회의하는 정도다. 자취한 지 한참 지나서도 나는 부모님과 꾀나 심리적으로 가깝다.


"나는 문제를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다"

교감에서 비롯된 상호 간의 믿음은 내게 자신감을 준다. 울고 불고 데굴데굴 구르다 미치고 팔짝 뛸 판인 일이야 왜 없겠는가. 다만, 어릴 적부터 '알아서 잘 했다'는 나이기에 알아서 살 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막연한 긍정 에너지가 어느 순간 솟구친다. 뭐 하나 크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어느 환경에서건 내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매우 높이 살만 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지금까지 인생에 꽤나 큰 도움이 되어 왔다. 특히 삼십 대가 되면서부터 이 자신감이 나의 큰 보물이라는 생각에 확신이 든다. 스스로 인생을 잘 해쳐나갈 수 있다는 용기, 사람에게 그 이상 중요한 것이 있을까.


며칠 전 세 살 난 아들을 키우는 친구의 걱정을 듣게 됐다. 


조리원 동기의 아이는 구사하는 어휘가 다르더라. 그 집은 엄마가 책을 많이 사고, 읽어주고, 책장의 배열을 바꿔가며 노출시키는 부류의 책에 변화를 준다더라. 아이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아이가 뒤쳐지는 건 아닐까. 선행학습 없이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기도 어렵다던데. 기타 등등. 


친구의 걱정 중 안타까운 부분은 '죄책감'에 대한 것이었다. 난 비록 미혼이지만, 엄마들의 죄책감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참 많이 들어왔다.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이 있고, 아이가 손톱이라도 물어뜯으면 애정결핍이 아닐까 걱정하며 가슴이  철렁한다 했다.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아이의 육아 비용에 뭔가 보태야 하는 것은 아닌가도 걱정, 지금 일을 해야 아이가 더 컸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도 불안하다더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다들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보이는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 역시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 번씩 우리 아빠도 "우리 딸이 더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컸으면 더 잘됐을 텐데" 하셨던 것도 생각난다.

금수저 흙수저. 요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답답하기도 하면서 무척 안타깝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따위가 과연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역시, 조상 대대로 물려오던 땅이 갑자기 발견되어 큰 돈을 물려받게 된다면 그 신남은 죽은 백두산도 살려낼 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금 상태 그대로에서 그것이 더해진다면'의 가정이다. 아이언맨 슈트를 수백 개 물려받는다 해서 그것만으로 게임 끝인 건 아니지 않은가. 나에게는 그래서 책을 엄청 많이 읽어주는 부모보다, 커리어가 엄청난 부모보다, 재산이 많은 부모보다 그냥 우리 엄마 아빠가 훌륭하다. 찻잔을 보고 딸을 떠올릴 수 있는 그 마음. 딸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에 대한 통찰력.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와 배려가 없이는 갖기 어려운 자산이다. 곁에 언제나 교감할 수 있는 상대가 있고, 그들로부터의 믿음이 있고, 그래서 세상살이에 자신이 있다면 이거야말로 꽤나 훌륭한 게 아닐까. 중요한 것은 결국 '부모와 자녀가 얼마나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가'라 생각한다.


엄마가 준 찻잔에 차를 마시면 허한 마음이 채워진다.

부모님이 어느 모임에 가 서건 "아이고, 너네 집은 아들만 둘 이어서 어쩌냐. 딸이 좋아." 할 때마다 무척 뿌듯하다. 내가 세상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이거다 싶다. 딸이 좋다는 부모님이 챙겨주신 갖가지 음식들을 먹고 있으면 마음이 꽉 차오른다. 내가 이런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꽤 기쁘다.


조만간 또 빈 트렁크를 덜덜 끌고 내려가 가득 채워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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